부동산 투자는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의 조합으로 이뤄집니다. 타인자본에는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신용대출, 사업자대출 등이 있고, 최근에는 정책자금 대출도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급등한 서울 주요 지역의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십수억 원의 타인자본을 조달하지 못하면 사실상 접근조차 어렵습니다.
그중 전세대출은 고액 전세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대표적인 주거 안정 수단입니다. 임대차라는 일종의 '사적 대출'에 금융권이 자금을 펀딩하는 것입니다. 임대차가 종료되면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합니다. 임대인은 전세대출을 실행한 금융권에 보증금을 돌려줍니다.
현금이 넉넉한 임대인이 아니라면, 다음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받아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만약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거나 전세가가 떨어지면, 임차인이든, 임차인에게 전세대출을 해준 금융권이든 보증금을 떼일 수 있습니다.
집값 급등 원인으로 지목되자... 정부, 대출 조이기
이렇게 금융권이 안심하고 전세대출을 해주는 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보증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2013년 9월에 출시되었고, 가입 조건을 완화하면서 가입 건수와 보증금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이 전세가 상승을 유발하고 집값 상승을 자극하는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최근 가계부채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자 정부는 대출을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세대출 또한 주요 검토 대상입니다. 최근 HUG는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기존 100%에서 80%까지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조건부 전세대출 자체도 중단됐습니다. 나아가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전세대출까지 포함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세대출이 줄어들면 그만큼 주택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겁니다.
실제와 보증금이 다르다면? 지급을 거절한 HUG
그런데 계약서에 실제 거래금액을 달리 적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은 취득세 등 각종 세금을 줄이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전세대출에서는 양상이 다릅니다. '업'계약서는 임차인이 전세대출을 최대한 받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전세대출을 받아 생활비나 다른 부동산 투자로 사용하기 위해, 업계약서는 현장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었으며, 일종의 관행처럼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금융권 입장에서도 의심이 들어도 HUG가 보증해 주니 안심하고 대출을 실행해 주었습니다.
대법원은 최근 이같은 흐름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허위의 전세계약은 전혀 보증받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전세대출에 상당한 파장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7년 8월, 한 임차인과 임대인은 보증금 2억3000만원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계약서에는 보증금이 2억6000만원으로 기재됐습니다. 그런데 임차인은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보냈고, 대출금 중 3000만원은 다른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은행은 2억6000만원이 적힌 계약서를 믿고 대출을 실행했습니다. HUG도 해당 2억6000만 원의 계약에 대해 보증서를 발급했습니다. 임차인은 확정일자를 받아뒀고, 전입신고도 마쳤습니다. 은행 측 직원이 임차인이 전입하여 거주하고 있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지만, 외형상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대출금이 상환되지 않았습니다. 은행은 HUG에 보증사고가 발생했다며 보증금을 청구했습니다. HUG는 뜻밖의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실제 임대차보증금 전액에 대해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계약서 기재된 보증금이 실제 지급된 금액과 다르므로, '허위 전세계약'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돈을 떼이게 된 은행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 "조금 부풀려도 전체가 허위 전세계약"
하급심은 HUG가 은행에게 실제 전세보증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전세계약이 다소 부풀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2억3000만원의 전세계약이 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임대인에게 보증금으로 지급된 범위 내에서는 유효한 전세계약이고, 따라서 HUG는 그 금액만큼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대법원 2025. 5. 29. 선고 2023다244871 판결). 대법원은 계약서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면, 일부 금액만 허위라도 '허위 전세계약'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즉, '조금만 허위라도 보증대출 실행에 영향을 미쳤다면, 보증계약 체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사항'이라는 입장입니다.
실제로 보증약관에서는 '사기 또는 허위의 전세계약으로 보증부 대출을 받았을 때'를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HUG가 운영하는 공적 기금이 부당하게 사용되거나, 적정하게 분배·사용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도 강조하였습니다. 은행은 결국 그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HUG의 보증이 든든하니 괜찮을 줄 알았지만, 결국 돈을 떼이게 된 겁니다.
'남들 다 한다'는 업계약서, 또다른 규제 요인으로
"대출도 능력이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대출받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업계약서는 대출을 받기 위한 편법이었습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손발을 맞추면 실제 보증금보다 높은 금액을 적은 계약서로 확정일자와 보증서를 받고, 그 금액에 맞춰 대출을 받는 관행이 반복돼 왔습니다.
설령 금융권이 직접 임대인의 계좌에 보증금을 입금하더라도,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업한 대출금을 지급해 임차인이 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임대인이 임차인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HUG 보증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금융권이 HUG 보증서만 있으면, 계약서, 확정일자, 전입신고만 확인하고 전세대출을 실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전세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에 대비해야 합니다. 금융권으로서는 '계약서가 있으면 끝'이 아니라, 계약서가 진짜인지, 실거래가 맞는지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결국 이는 금융권의 전세대출 심사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더욱 깐깐하게 조건을 살펴야 합니다.
제대로 걸러낼 수 없다면 전세대출 자체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권은 전세대출 심사를 더욱 강화하거나, 아예 전세대출 자체를 줄여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남들 다 한다는 업계약서가 전세대출을 조이는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김용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ㅣPF사업, 정비사업, 건설하도급 등 부동산 분쟁 전문가다.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원을 수료했다. 투자자산운용사와 국가공인 원가분석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고 하도급법과 건설산업기본법을 연구해 업계 최초로 전자책을 출간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전문건설공제조합, 코트라(KOTRA) 및 각종 건설사와 학회에서 강의했다.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을 가졌으며, 베트남 현지에 진출한 건설사에 파견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를 토대로 해외부동산투자 관련 분쟁에도 관여하고 있다. 2024년 대한변협 우수변호사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