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미국프로농구(NBA) 최우수선수(MVP) 조엘 엠비드(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지난 시즌 유럽 축구 리그 최다 득점자인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이 선택한 브랜드는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아니었다. 이들은 3위 스포츠 브랜드 스케쳐스(Skechers)를 신었다.
스케쳐스의 대표 제품인 '핸즈프리 슬립온 슈즈(손대지 않고 신는 신발)'는 멋보다는 편안함을 중시하는 고객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스케쳐스는 내년까지 연간 매출 약 100억달러(약 14조5000억원)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스케쳐스, 편안함·합리적 가격 내세워
스케쳐스는 경쟁사들이 간과한 고객층을 겨냥하며 성공을 거뒀다. 나이키는 유명한 운동선수, 호카와 온러닝은 열정적인 러너들을 주요 타켓으로 삼았다. 반면 스케쳐스는 편안함을 중시하는 은퇴층이나 자녀에게 비교적 저렴한 신발을 사주려는 부모들의 수요를 공략했다. 화려한 마케팅 대신 편안함과 합리적인 가격에 집중한 전략이 주효했다.
스케쳐스 측은 "우리는 발을 덮는 사업을 하는 회사"라며 "신발을 편안하고 저렴하게 만드는 데만 집중한다"고 밝혔다. 스케쳐스의 어린이용 신발은 약 50달러(약 7만원)다. 가장 비싼 제품은 굿이어 고무를 사용한 115달러(약 16만원)짜리 피클볼 신발이다. 존 반데모어 스케쳐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주요 브랜드들이 하던 방식과 거의 정반대였다"면서 "우리는 다른 플레이어였다"고 말했다.
한정판 제품에 의존하지 않는 점도 특징이다. 스케쳐스는 디자이너, 아티스트, 유명인들과 종종 협업하면서도 수백 달러를 호가하는 한정판 제품은 출시하지 않는다. 반데모어 CFO는 "한정판 제품은 우리의 고객과 맞지 않는다"며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92년 설립된 스케쳐스는 2010년대 초 워킹화의 성공으로 성장세를 탔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당시 업계 선두 나이키가 100달러(약 14만원) 미만 제품의 비중을 줄이고 저소득 소비자를 겨냥한 많은 소매점에서 철수한 틈을 공략하며 입지를 강화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설명했다.
스케쳐스는 해외 확장에도 적극적이었다. 매출의 약 3분의 2가 미국 외 지역에서 발생한다. 스케쳐스는 독자적인 매장을 열기보다는 가맹점을 활용해 현지 시장에 진출했다. 인도 시장에서는 나이키보다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스케쳐스는 최근 축구화와 농구화를 제작하며 스포츠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23년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해리 케인과 계약을 맺었고, 지난해에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조엘 엠비드를 영입했다. 데이비드 와인버그 스케쳐스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그들을 영입한 이유는 시장에서 그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나이키 부진 틈타 저가 시장 장악
스케쳐스의 매출은 2023년 기준 80억달러(약 11조7000억원)로, 10년 전 18억달러(약 2조6000억원)에서 급성장하며 업계 3위에 올랐다. 스케쳐스는 2026년까지 연간 매출 100억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은 2021년 전년 대비 37%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까지 18%, 7%, 1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2021년 전년 대비 347% 급증한 후 2023년에는 44% 성장했으며 2024년에는 16% 성장이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 인텔리전스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신은 브랜드는 나이키(63%)·아디다스(40%)·스케쳐스(25%) 순이었다. 실제 구매한 브랜드는 나이키(57%)·아디다스(40%)·뉴발란스(25%)·스케쳐스(24%) 순으로 나타났다.
스케쳐스는 나이키의 부진한 실적을 틈타 주가 상승세를 보였다. 2020년 1월 이후부터 이달 9일까지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주가는 각각 26.0%, 13.9% 하락한 반면, 스케쳐스는 85.4% 상승했다.
한편 나이키는 부진한 실적이 이어지자 2022년 9월 CEO를 교체했다. 엘리엇 힐 나이키 신임 CEO는 지난달 "그동안 과도한 할인 정책이 브랜드 이미지와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재고 관리와 할인 최소화를 통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실적발표에서 "회계연도 2분기(9~11월) 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했다"고 말했다. 나이키가 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함에 따라 스케쳐스가 저가 시장에서 더욱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