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과 친분으로 캐스팅하지 않습니다. 신인 때 딱 한 번 그렇게 해본 적이 있는데, 너무너무 후회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 시리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이 시즌2 공개를 앞두고 불거진 특정 소속사 배우 몰아주기 혹은 친분 캐스팅 논란에 밝힌 입장이다. 해당 의혹은 시즌2에 이병헌과 같은 소속사 배우인 박성훈과 이진욱, 또 이정재·이병헌과 두터운 친분이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최승현(톱)이 합류하면서 불거졌다.
'오징어게임'이 워낙 관심을 많이 받은 작품이라 논란이 됐지만, 한 작품 내에서 한 소속사 복수의 배우가 출연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호평 속에 종영한 tvN '미지의 서울' 박보영과 박진영, 7일 종영을 앞두고 시청률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JTBC '에스콰이어' 이진욱과 정채연도 모두 같은 BH엔터테인먼트에 몸담고 있다.
방영 예정작을 보더라도 내년 방송 예정인 JTBC 드라마 '미혼남녀의 효율적 만남' 한지민, 박성훈(BH엔터테인머트)을 비롯해 tvN 새 드라마 '얄미운 사랑' 이정재와 임지연(아티스트컴퍼니), '키스는 괜히 해서!' 안은진과 장기용(UAA)도 각각 한솥밥을 먹는 사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와 협력해 2012년 5월 전수조사한 결과 국내 전체 연예기획사 중 배우 중심 매니지먼트사는 120여개였다. 최근 조사 결과는 없지만, 올해 2월 기준 현재 연매협에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수는 약 260개라는 점에서 그 수는 더욱 늘어났다고 예상할 수 있다.
매니지먼트사가 늘어났지만, 한 회사 배우들이 한 작품에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가 늘어난 건 주연 캐스팅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한 작품에 한 매니지먼트사 배우가 다수 출연하는 경우는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전엔 주인공이 캐스팅되면 서브 주연이나 조연급으로 같은 회사 배우가 함께 출연했다면, 최근엔 주연으로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더욱 주목받게 됐다는 것.
이와 더불어 과거엔 '끼워팔기'라며 '하차 요구'까지 불거질 만큼 '겹치기' 출연에 시청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근래에는 캐릭터에 맞는다면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라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방영된 MBC '보고싶다'에 장미인애가 캐스팅된 직후 주연배우 박유천의 팬덤에서 "소속사 끼워팔기가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이들의 매니지먼트사에서 "장미인애는 정당하게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된 것"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박유천도 제작발표회에서 "저에 대한 관심은 감사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드신 게 아닌가 싶다"며 "연기만 두고 보면 제가 후배인데, 중간에 서다 보니 난감할 수도 있었다"면서 장미인애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캐스팅이 알려진 초반 일부에서 우려나 잡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배우가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설득할 경우 이런 논란은 사그라드는 사례가 축적됐다. 여기에 배우 소속사들이 제작까지 맡게 되면서 주인공이 모두 한 회사에 속해 있어도 더 이상 문제 삼기 어려워진 부분도 생겼다.
한 배우 매니저는 "주인공에게 책(대본, 시나리오)이 제일 먼저 가는데, 그걸 보고 '이 역할로 잘 맡는 우리 애 있어요'라고 말을 하는 건 매니저로서 기본"이라며 "캐스팅을 강요할 순 없지만, 오디션이나 미팅 기회는 달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캐스팅 전 상황을 설명했다.
수십년 경력의 한 연출자도 "편성이나 제작을 확정 짓는 가장 중요한 단계가 캐스팅"이라며 "모두가 탐내는, 해외 판매가 가능한 주요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그 회사 배우들을 같이 보는 건 흔하다"고 귀띔했다.
다만 캐스팅 단계에서는 다른 회사였지만, 공개 전에 한솥밥을 먹는 경우도 있다. 촬영장에서 함께 지내면서 친분을 쌓고, 계약 만료 시점이거나 회사가 없을 경우 자연스럽게 전속계약까지 이뤄지는 것.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마'에서도 배우 이하늬와 방효린 모두 팀호프(TEAMHOPE)에 소속돼 있다. 그렇지만 방효린은 '애마' 촬영 이후 팀호프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캐스팅 당시에 한솥밥을 먹은 배우 류준열, 설경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들쥐'를 촬영하는 시기에 씨제스엔터테인먼트가 배우 매니지먼트 사업을 정리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이 때문에 몇몇 매니지먼트사와 작품에서는 '끼워팔기'라는 오명이 붙는 것에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같은 조건이라면 우리 소속 배우 중에도 옵션이 있다는 걸 정말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정도지, '우리 애 안 넣어 주면 주인공 빼겠습니다' 이러면 말 나오기 딱 좋다"고 항변했다.
다만 한 연출자는 "주인공 출연 제안을 한 배우 회사에서 답을 빨리 안 줘서 알아보니, 다른 역할에 그 소속사에서 밀고 있는 배우를 넣겠다고 결정하지 않아서였더라"며 "누가 대놓고 강요하진 않지만 눈치껏 돌아가는 상황은 있다"고 자신이 겪은 일화를 털어놓았다.
또 다른 관계자도 "편성 등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배우가 교제하고 있는 여자친구를 상대역으로 추천하는 경우도 있다"며 "해당 작품이 공개된 후 두 사람의 교제설이 불거졌을 때도 당사자들은 부인했지만, 이미 포스터 촬영 현장에서부터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