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는 정원에서 몸과 마음을 돌보는 정원으로… 춘천 제이드가든[김선미의 시크릿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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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시 제이드가든 이끼원의 토끼 인형이 팔을 베개 삼아 누워있다.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강원 춘천시 제이드가든 이끼원의 토끼 인형이 팔을 베개 삼아 누워있다.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정원 안쪽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이끼원에서 부러운 토끼를 만났다. 진짜 토끼는 아니고, 폭신한 이끼 위에 팔을 베개 삼아 누운 토끼 인형이었다. 그 토끼 팔자가 어찌나 부럽던지. 7년 전 BTS 리더 RM이 휴가 중 SNS에 자연을 즐기는 사진과 함께 ‘이러고 삽니다’라고 적었던 바로 그곳, 강원 춘천시 제이드가든이다.

제이드가든은 이달 25일과 8월 1, 15, 22일 오후 6시에 이곳 이끼원에서 약 30분 동안 무료 싱잉볼 힐링 사운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눈이 맑아질 듯한 초록을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정원을 소리와 호흡, 몸의 감각으로 경험하자는 것이다.

● 제이드가든이 달라진다

2011년 문을 연 제이드가든은 오랫동안 ‘숲속의 작은 유럽’으로 통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풍 건축물과 유럽식 화단은 종종 드라마와 광고의 배경이 됐다. 봄의 벚꽃과 목련, 여름의 원추리, 가을의 은행나무 미로는 계절마다 방문객을 불러들였다.

유럽풍 건축물과 화단이 특징인 제이드가든.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유럽풍 건축물과 화단이 특징인 제이드가든.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제 제이드가든은 그 아름다운 풍경 위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고 있다. 이른 아침의 가드너 산책과 건강한 브런치, 어린이를 위한 자연 놀이, 가드닝과 공예 클래스, 이끼원에서의 명상까지…. 식물을 보여주는 수목원에서 사람이 머물고 먹고 걷고 마음을 회복하는 웰니스 가든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유럽 정원을 보는 듯한 제이드가든 .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유럽 정원을 보는 듯한 제이드가든 .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러한 변화는 자본과 공간을 다루는 기업들이 정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제이드가든을 운영하는 한화솔루션은 최근 일본 홋카이도 니세코와 춘천 제이드가든 인근에 럭셔리 리조트 ‘무와(MUWA)’를 선보이며 하이엔드 웰니스·헬스케어 부동산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정원이 단순히 공간을 치장하는 장식이나 관광객을 모으는 배경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건강과 생활 리듬을 돌보는 핵심 콘텐츠로 확장되는 트렌드다. 기업의 정원이 인간의 지속 가능한 삶을 지원하는 인프라로 움직이는 흐름이 눈길을 끈다.

곳곳에 조각상이 놓인 제이드가든.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곳곳에 조각상이 놓인 제이드가든.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여름의 제이드가든은 ‘기다리는 마음’제이드가든의 여름 숲길에는 지금 원추리가 한창이다. 주황과 노랑, 살구색과 자주색 꽃들이 긴 꽃대를 세우고 바람에 흔들린다. 제이드가든은 국립수목원과 함께 국내외 원추리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연구해 현재 50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 16만3528㎡(약 5만 평) 규모의 수목원에는 원추리를 비롯해 만병초 50여 종, 단풍나무류 150여 종, 목련류 130여 종 등 모두 400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지금 한창인 원추리.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금 한창인 원추리.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원추리는 영어로 ‘데이릴리(daylily)’다. 학명 헤메로칼리스(Hemerocallis)도 ‘하루’와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 꽃 한 송이가 대개 아침에 피어 저녁이면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포기에는 여러 봉오리가 달려 차례로 꽃을 연다. 어제의 꽃이 지면 오늘의 꽃이 피고, 오늘의 꽃 옆에는 내일의 봉오리가 기다린다. 그래서 원추리에는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꽃말이 따라붙는다.

국립수목원과 함께 국내외 원추리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연구해 현재 50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국립수목원과 함께 국내외 원추리 유전자원을 수집하고 연구해 현재 500여 종을 보유하고 있다.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대부분은 낮에 피어 나비 같은 곤충을 부르지만, 일부 원추리는 해 질 무렵 꽃을 열고 밤에 향기를 낸다. 원추리는 자신을 찾아올 생명체의 시간을 헤아린다. 기다림은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라 만남을 준비하는 적극적인 생명의 방식이다. 웰니스 역시 단번에 몸과 마음을 고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날마다 자기 상태를 살피고,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회복의 시간을 기다리는 일에 가깝다. 하루만 피는 원추리가 오히려 긴 돌봄의 의미를 전한다.

● 어린 은행나무가 미로가 된 시간

원추리 정원을 향해 숲길을 걷다 보면 은행나무로 이뤄진 미로를 만난다. 은행나무는 높이 자라는 가로수나 노거수로 익숙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람 키 높이의 촘촘한 생울타리로 방문객을 이끈다.

은행나무 미로원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설계된 공간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유럽의 미로 정원처럼 서양측백을 심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사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현장의 가드너들은 어린 은행나무 묘목을 심어 수벽으로 기르는 아이디어를 냈다.

제이드가든 은행나무 미로원.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제이드가든 은행나무 미로원.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당시 묘목은 1m도 되지 않았다. 가드너들은 나무를 여러 줄로 심고 줄기를 낮게 잘라 새 가지가 촘촘하게 돋도록 유도했다. 손가락 굵기의 묘목으로 어느 세월에 미로를 만들겠느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몇 년 동안 전정하고 형태를 다듬자 사람 키를 넘는 생울타리가 됐다.

서양측백으로 만들었다면 사계절 비슷한 초록의 미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은행나무 미로는 봄이면 연둣빛 새잎을 내고, 여름에는 짙은 초록의 벽이 되며,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든다. 겨울에는 잎을 내려놓고 가지와 미로의 구조를 드러낸다.

묘목을 키워  시간과 함께 만든 은행나무 생울타리.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묘목을 키워 시간과 함께 만든 은행나무 생울타리.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비용을 아끼기 위한 선택이 오히려 제이드가든만의 개성을 만들었다. 정원에서 가장 비싼 재료는 완성된 큰 나무가 아니라 작은 나무가 자라기를 기다리며 해마다 손을 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웰니스 가든도 시설 몇 개를 들여놓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오래 걷고 싶은 그늘,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길, 계절마다 다시 찾아올 이유가 시간이 흐르며 축적돼야 할 것이다.

● 설계도에 없었던 이끼원

수목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햇빛이 낮아지고 계곡물 소리가 가까워진다. 바위와 나무 밑동, 땅의 작은 굴곡을 이끼가 짙은 초록으로 감싸고 있다. 이끼원이다.

BTS 리더 RM이 다녀간 이끼원.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BTS 리더 RM이 다녀간 이끼원.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 공간은 원래 설계도에 없었다. 처음에는 별도의 개발 계획이 없는 계곡 부지였다. 춘천의 긴 겨울 동안 공사가 중단된 시기에 직원들이 현장을 살피다가 하얗게 쌓인 눈 사이로 드러난 이끼를 발견했다. 길을 조금만 내면 새로운 정원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일반적으로 이끼 정원을 조성하려면 그늘을 만들고 습도를 조절하며 이끼를 옮겨 심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이미 알맞은 물과 빛, 지형과 식생이 있었다. 가드너들은 새 풍경을 만들기보다 그 자리에 존재하던 풍경을 알아보았다. 이끼원의 출발은 ‘조성’이 아니라 ‘발견’이었다.

각종 이끼가 폭신하게 깔린 이끼원.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각종 이끼가 폭신하게 깔린 이끼원.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끼원에 들어서면 사람도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춘다. 작은 것을 보기 위해 몸을 굽히고, 물소리를 듣기 위해 말을 줄인다. 웰니스 가든은 자연의 힘을 사람이 다시 알아차리도록 돕는 장소다.

● 정원은 라이프스타일이 된다

제이드가든 입구의 ‘살롱제이드’는 강원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한 브런치와 베이커리, 커피와 주스를 선보인다. 비건과 글루텐 프리 등 다양한 식습관을 고려하며 음악과 책도 함께 큐레이션한다. ‘스튜디오제이드’에서는 가드닝 도구와 생활용품을 소개하고 관련 클래스를 연다. 키친가든에서는 차이브와 배초향을 비롯한 허브와 채소가 자란다.

가드닝 용품을 소개하는 스튜디오 제이드.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가드닝 용품을 소개하는 스튜디오 제이드.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숲을 걷고 계절의 꽃을 살피며,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명상하는 삶. 프리미엄의 의미가 소유물의 가격에서 시간과 경험의 질로 옮겨가는 지금, 정원은 사람이 걷고 숨 쉬며 생활 리듬을 회복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 새로 만들 수 없는 오랜 시간을 품고 있기에 이 공간의 제안은 설득력을 얻는다.

정원은 사람이 걷고 숨 쉬며 생활 리듬을 회복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정원은 사람이 걷고 숨 쉬며 생활 리듬을 회복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 춘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제이드가든은 이달 17일부터 8월 23일까지 운영 시간을 연장한다(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공휴일 오전 8시~오후 8시). 한낮의 더위를 피해 밤새 식물이 수분을 머금은 이른 아침이나, 햇빛이 부드러워지는 저녁의 숨통을 독자들에게 내어주기 위함이다. 자연 속에서 천천히 걷고, 잘 먹고, 자기 몸의 속도를 되찾는 법을 제안하는 정원. 그 고요한 숲길을 걷다 보면, 첫머리에 마주했던 이끼 위 토끼 인형이 왜 그토록 부러웠는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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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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