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융합(AI Convergence)'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기술과 정책, 산업 담론의 중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마치 그것이 미래 사회를 위한 필수 조건이자, 모든 문제의 해결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어를 접할 때마다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AI 융합이란 과연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융합인가?
AI 융합은 기술 간 단순한 조합이나 연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전적으로는 '인공지능 기술이 기존의 산업·서비스·사회 구조와 통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기술적으로는 AI의 학습·판단·예측 기능이 다양한 도메인에 내재화되어 '지능화된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만으로는 AI 융합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다. AI 융합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의미 있는 연결'을 설계하는 행위다.
AI는 본질적으로 연결을 추론하는 도구다. 인간이 놓치는 변수 간의 관계, 대규모 데이터 속에 숨겨진 상관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패턴을 찾아내고 예측한다. 그런 점에서 AI는 '기계적 지능'이 아니라 '연결의 감각'이다. 이 지점에서 '융합'은 단지 기술 간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기술-사회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시스템 설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AI가 교통 시스템에 융합될 때, 단순히 차량의 자율주행 성능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도로 위에서 사람의 안전, 이동의 평등, 환경의 지속성을 모두 고려하는 지능형 교통 생태계로 발전해야 한다. 의료에서의 AI 융합 역시 단순한 진단 자동화가 아니라, 의사의 직관을 보완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보건 시스템 전체를 예측가능하게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AI 융합은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술의 연결이 아니라 가치의 연결, 기능의 확장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이어야 한다. 결국 AI 융합이란, 인간의 의사결정과 상호작용, 감정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총체적 지능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에 맞추어 우리 정부는 최근 몇 년간 여러 부처에 걸쳐 AI 융합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으며, 이는 사일로형 혁신에서 범부처 협력으로의 전략적 전환을 시사한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의 'AI+X 사업'은 ETRI, KISTI 등의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의료부터 제조까지 다양한 분야별 AI 모델을 육성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스마트시티 챌린지' 등과 같은 스마트도시 사업을 통해 세종시 등 도시에 AI 기반 교통 흐름 시스템을 적용하는 등 스마트도시 거버넌스를 발전시키고 있다. 금융위원회 또한, 과기정통부와 공동으로 'AI 기반 금융서비스 혁신 로드맵'을 수립하여 초개인화 금융 및 부처 간 데이터 협업을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공공 인프라에 지능을 내장하고 정책 차원의 융합을 제도화하는 등 한국의 AI 접근 방식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중요한 숙제를 안고 있다. 첫째, 융합을 위한 정책 체계가 기술 중심으로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부처 간 융합 프로젝트는 예산, 법제도, 데이터 인프라에서 단절된 구조로 되어 있어 기술의 시너지를 구조적으로 제한한다. 둘째, 융합의 최종 수혜자가 '사람'이라는 철학적 전제가 부족하다. AI는 효율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기술이 되어야 하며, 그 기준은 정확도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를 어디에 쓸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가 사람과 사회를 어떻게 더 깊이 있게 연결할 수 있는가?'로 말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기술자 중심의 설계가 아니라 시민과 사용자, 그리고 사회 전체를 설계 초기부터 포함하는 공동 설계(Co-design) 철학이 필요하다. 데이터는 기술의 재료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다. 알고리즘은 코드가 아니라 판단의 책임이다. 정책은 기획서가 아니라 공공성의 언어여야 한다.
AI 융합은 기술 발전의 끝이 아니라, 사람 중심 기술 설계의 시작점이다. 기술과 산업, 정부와 시민, 인간과 AI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결될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융합 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