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중국엔 60억부가 인쇄된 '공산주의 성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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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들었던 100권의 책 찾아 떠나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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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중국에는 초판만 7억4000만부가 인쇄된 책이 있었다. 중국 공산주의 성경으로 은유되는 책 '훙바오수'였다.

훙바오수는 마오쩌둥 어록 선집이다. 처음엔 병사와 인민에게 무료 배포된 선전물이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암기가 의무일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사를 뒤흔든 막강한 책인 것이다.

스코트 크리스찬슨과 콜린 살터의 '세상을 바꾼 100권의 책'은 제목 그대로 세상을 흔든 서적들을 여행하는 책이다. 인류사의 분기점엔 반드시 한 권의 책이 존재했음을 차분하게 증명한다.

'혁명의 빛'으로 여겨지던 마오쩌둥의 어록 427개가 책으로 배포되자 중국 전역의 종이와 잉크는 동났다. 출판사 직원들은 이 어록을 인쇄하느라 과로에 시달렸다고 이 책은 기술한다. 수십 년간 20억부, 많게는 60억부가 인쇄됐으니 이는 중국 인구를 초과하는 수치였다.

넷플릭스 영화로도 제작된 장편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다룬 명저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주인공은 파울 보이머. 저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18세 때 프랑스 남부의 서부 전선에 배치된 경험을 투사해 보이머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전쟁의 참상을 다룬 소설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절대로 죽지 않는 괴물과 같은 전쟁을 고발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진짜 적은 전방 너머의 적군이 아니라 전방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권력자"라는 주제를 형성해 상찬의 중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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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 구분 없이 전쟁은 모든 병사에게 지옥임을 간파한 것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1933년 나치에 불태워지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결국 살아남아 5000만부 이상 팔렸다.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오늘날 최고의 고전으로 통한다. 하지만 1899년 처음 출간된 직후엔 세상의 관심이 싸늘했다. 초판 600부가 소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8년. 당시만 해도 꿈이란 뇌의 잔여가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고 봤는데 프로이트는 "꿈이야말로 깨어 있는 낮의 정신 활동에 기인하는 무의식의 증거"라고 봤다.

즉 '꿈을 해석하는 심리학적 기술'로서 이 책은 1920년대에 이르러 세상을 뒤흔들었으며 그 결과는 지금의 명성과 비례한다.

1991년 아트 슈피겔만이 출간한 만화책 '쥐'는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새로운 형식으로 조망해 세상을 바꿨다.

이전만 해도 만화란 네 칸짜리 카툰을 기본으로 삼았다. 그러나 '쥐'는 만화의 장르적 틀을 깨부수고 서사적 생동감을 입혔다. 폴란드계 유대인 남성 블라덱을 중심으로, 그의 아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그린 '쥐'는 퓰리처상까지 거머쥐며 그래픽 노블의 시초가 됐다.

100권 책의 초판 표지를 대형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펼쳐볼 이유다. 다 읽으면 손에서 진땀이 난다.

책의 힘은 칼보다 총보다 강했다. 우리만 그걸 자주 잊는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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