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역사 200년을 가로지르는 책에 대한 고민
로베르 에스까르삐(1918~2000)는 프랑스의 문학평론가였다.
그의 저서 '책의 혁명'은 1965년 프랑스에서 출간됐고,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지금은 절판됐지만 최근 한 대학에서 이 책을 펼치며 1960년대 고민이 오늘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에스까르삐의 고민은 이렇다. '책은 지식인가, 상품인가?'
에스까르삐는 18세기 철학자이자 미학자 드니 디드로(1713~1784)의 글 '서점의 경영에 관한 서한'을 인용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저지르는 큰 실수는 바로 도서 출판에다 직물업의 원칙들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출판업자가 소매에 맞추어서 책을 만들 수 있고, 변덕스러운 유행과 기호의 다양성만을 따르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디드로가 이 글을 쓴 해는 1767년. 에스까르삐가 '책의 혁명'을 쓴 시점보다 이미 200년 전이었다. 하지만 디드로와 에스까르삐의 고민은 같았다. 산업화된 출판은 책을 지식의 매개가 아니라 '기획 상품'으로 환원시키고 있었다. 예측 가능한 독자층만을 겨냥한 책만이 살아남는 구조에선 작가의 '지적 모험'이 사라진다. 그 결과 책은 사회적 지지를 잃고 말 위험에 처한다.
에스까르삐에 따르면 출판사는 일반 기업이 아니다. 출판사는 작가의 실패 가능성을 보호해야 하는 공동체적 장소다. 출판사의 존재 의미는 모험을 부추기는 데 있다. 그러나 갈수록 이 목적이 희미해진다.
출판의 본질에 대한 에스까르삐의 진단은 냉정할 만큼 정직하다. 현실적으로 책의 대부분은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재쇄를 찍는 책은 10%, 5쇄 이상은 1% 남짓이다. 작가의 성공을 판매량으로만 측정하는 것은 곡해다. 작가의 진정한 성공은 그가 잠재적 독자의 심연으로 파고들어가는 시점부터 비롯된다. 작가는 사회의 집단의식 속에 편입되고, 상징적 인물로 '호명'된다. 그 결과 세상은 그에게 '해석'을 요구한다.
이때 출판사는 상징적 인물이 된 작가와의 '제휴'를 도모한다. 작가는 예민한 촉수가 돼야 하지만 대개 이런 경우 '시장의 수요'가 잣대가 된다. 이것은 교류와 공명이라는 책의 본질에서 벗어난 단순하고도 일시적인 소비가 아닐까.
에스까르삐는 인류 역사에서 책에 대한 정의(定義)가 완결된 적이 없음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어느 누구도 여태껏 책에 대하여 완전하고 결정적인 정의를 내린 적이 없다." 하지만 오히려 책에 대한 정의의 불가능성이야말로 책이라는 사물의 본질이다.
책은 상품이 아니라 실험이고 도전이어야 한다는 것.
훗날 우리가 아는 책의 형태가 사라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책은 '끝내 정의되지 않은 사물'로 기록될 수 있다. 그러나 책이 가진 감각은 언제나 인류를 추동했다. 이 감각을 믿으면서 지금 이 순간 인류는 책을 펼치고 있다. 책을 정의하지 못하면서도.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