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오늘 밤에는 어찌 된 일인지 전혀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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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감'은 일본 작가 30명이 원고 마감에 대해 쓴 글들을 모은 책으로, 작가들의 창작 고통과 핑계를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작가들은 마감일을 미루기 위해 신의 힘이나 나이를 핑계로 삼으며, 편집자의 압박을 느끼는 가운데 자신들의 속내가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의 저자 안은미는 일본의 무료 전자도서관에서 '시메키리'를 검색하며 이 흥미로운 내용을 발굴하고, 마감이 글쓰기의 필연적인 고통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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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못 지킨 작가 30인의 기상천외 '핑계'들

사진설명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들 중에 '마감'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 단어만 나오면 몸속 혈관이 수축되고, 좌측 상방 45도 허공에 눈길이 간다.

그런데 마감을 잘 지키면 오히려 희귀종으로 취급받는다. 작가의 글이 좀 늦어져도 출판사는 매섭게 독촉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 만드는 출판사가 언제일지 모르는 작가의 접신 혹은 예열을 마냥 기다릴 순 없는 법. 그래서 편집자들은 작가에게 공손하게, 그러나 독기를 품고 묻고 또 묻는다.

"독촉하려는 건 아니지만 원고는 언제쯤…."

이때 창작의 고통으로 눈물짓던 작가들은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핑계를 순식간에 '창작'해 눈앞의 편집자를 설득하려 하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편집자들이 작가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작가의 마감'은 일본 작가 30인이 남긴 원고 마감에 관한 글을 모은 책이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애써 핑계를 찾아냈지만 속내가 훤히 보이는 작가들의 글들을 마주하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쓰메 소세키는 한 편지에서 '마감일을 미루자'면서 그 이유로 무려 신(神)을 들었다. "14일이 마감일인데 14일은 안 되겠으니 17일로 하자. 그런데 17일이 하필 일요일이니까 18일로 하자"는 식이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신을 찾는다. "서두르면 신이 용납하지 않아요."

일본 대하소설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는 핑계로 '나이'를 든다. 그는 신문기자에게 소설 연재를 부탁받으면서 온갖 호의는 다 누렸다고 한다. 그런데 거절해야 했던 것. 거절 이유로 그는 '나이 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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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자꾸 모든 게 덧없게 느껴지고 현실이 절망스럽달까. 나이 탓이려니 했는데, 생각해보니 벌써 예순 살을 바라봐. 그러니 아내가 이 편지를 들고 가는 걸 부디 언짢게 생각지 말아 주시게."

청탁받은 원고, 그러니까 쓰라는 글은 안 쓰고, 그 글은 못 쓴다면서 엉뚱하게 다른 글을 남긴 작가들도 있다.

호조 다미오란 작가는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왜 쓰지 못하는가를 생각했다. 그때 그의 귀에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둬, 변명하지 마." 글이 안 써진 덕분에 이 글을 후대에 남겼으니 그것도 나름의 성과이긴 하지만. 그는 이어서 쓴다. "그렇다. 이제껏 원고를 쓰지 못한 핑계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나도 알고 있다…."

큭큭대며 읽다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일의 고통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 책은, 책이 만들어진 과정도 흥미롭다.

저자 안은미는 일본의 인터넷 무료 전자도서관인 아오조라문고에서 우리말로 하면 마감, 영어로는 데드라인(deadline)을 뜻하는 '시메키리(しめきり)'를 검색해 이 책을 냈다. 시메키리를 검색했더니 유명 저자들이 남긴 마감의 숙명에 관한 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마감은 글을 쓰는 모든 이의 숙명적인 고통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유한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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