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24일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시장이 분절화돼있다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정규직·비정규직 문제가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비임금 노동자가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이른바 ‘비임금 노동자’ 보호를 정책의 최우선순위로 삼겠다는 뜻이다. 김 후보자는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주 4.5일제 등 노동계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정책에 대해선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했다. 첫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이지만, 노동계가 내미는 청구서를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 “어떤 정책도 밀어붙이지 않겠다”
김 후보자는 이날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밝혔다. 김 후보자는 ”노란봉투법과 주4.5일 정년연장 등 노동 정책을 빠르게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해당 정책은) 디지털 전환이나 인구 변화 등 가치 대전환의 위기를 돌파해야 할 유력한 수단이자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면서도 “다만 어떤 제도나 정책도 당연한 명분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사용자인 기업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김 후보자는 “주 4.5일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 보겠다”고 했다. 또 사회적 대화 재개와 관련해 “어떤 결론을 내려놓고 대화를 시작하지 않겠다”며 “대화 자체가 목적이라고 하는 국제노동기구 3자 대화의 원칙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노사정 대화 과정에서 노동계 입장 뿐 아니라 경영계의 의견도 충분히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 노정 교섭에 ‘묘한 기류’
이날 김 후보자는 민주노총 위원장 때와 장관 후보자가 된 지금 생각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대해 “민주노총 출신이라는 점을 기억하겠지만 나는 장관 후보자“라며 “모든 것을 대표해서 노동 행정을 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또 “서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진다”며 정책 추진에 유연성을 가미하겠다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 출신인 김 후보자가 지명됐지만 노정 관계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후보자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던 2012년 6월 민주노총 중앙집행위를 열고 통합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의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상징으로 보고 당 설립부터 적극 지원해 왔다. 하지만 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 과정에서 부정선거, 폭력사태 논란에 휩쓸리면서 김 위원장은 지지를 철회했고, 통합진보당과 김 후보자의 사이는 크게 악화했다.
이후 통합진보당은 해체됐지만, 현 민주노총 집행부는 통합진보당의 후신으로 볼 수 있는 진보당 세력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민주노총이 노정 교섭에 나서면 다소 불편한 관계인 김 후보자와 대화를 해야하는 셈”이라며 “현 집행부 입장에선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인선”이라고 했다.
대선에서 두차례나 이 대통령 공식 지지선언을 한 한국노총 인사 대신 김 후보자를 임명한 것도 노동계에 메시지를 던진 것이란 의견도 있다. 김 후보자는 양대 노총 모두에 부채가 없다는 점에서다. 노동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 인선은 노동계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도 풀이된다”고 말했다.
실제 김 후보자는 이날 전임 윤석열 정부가 실시한 ‘노조 회계공시 의무‘를 폐지해 달라는 노동계 요구에 대한 질문에 “양대 노총에 (실시된) 불합리한 조치에 대해 잘 살펴보겠다”면서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할 수 있도록 돕는 차원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곽용희/하지은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