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던 중국 전기차 시장이 숨을 고르고 있다. 올 상반기 판매가 전년 대비 33% 늘었지만, 공급 과잉으로 재고는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1위 비야디(BYD)가 불을 지핀 할인 경쟁으로 업계 구조조정이 본격화했다. 한때 500개에 달하던 업체 중 결국 20개 안팎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이 와중에 ‘없어서 못 사는’ 차가 있다. 샤오미가 지난 6월 출시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 YU7이다. 3분 만에 20만 대 주문이 몰렸고, 지금도 1년 이상 기다려야 인도받을 수 있다.
레이쥔, 태풍의 길목에 서다
한때 ‘대륙의 실수’라고 불리던 샤오미가 전기차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애플이 10년간 수십억달러를 들이고도 실패한 전기차를 샤오미는 단 3년 만에 양산에 성공했다. 베이징의 무인화 공장에서는 수백 대의 로봇팔이 76초마다 차 한 대를 조립해낸다.
샤오미의 성공 뒤에는 창업자 레이쥔의 확고한 철학이 있다. 그는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충격을 받고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세상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확신하고, 2010년 41세의 나이에 샤오미를 창업했다. 그의 유명한 말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는 단순한 유행 추종이 아니라 시대를 읽고 그 흐름에 자신을 던지는 결단을 뜻한다. 창업 11년 후 아무 기반 없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레이쥔은 양명학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초 왕양명은 주자학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며 ‘지행합일’, 즉 아는 것을 실천해야 진짜 앎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남간 토벌에서 병법에 얽매이지 않고 지형과 민심을 읽어 전술을 수시로 바꾸며 비적을 소탕했다. 레이쥔도 늘 실전 속에서 배운다. 창업 전 온라인 포럼에 3000건이 넘는 글을 올리며 사용자 인사이트를 쌓았고, 이 과정에서 생긴 팬들이 초기 충성고객이 됐다. 고객 피드백은 곧장 제품 개발에 반영됐고 제조, 조직 관리, 글로벌 진출에 이르기까지 ‘빠른 실행→피드백→운영 모델 구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했다. 알리바바의 마윈, 화웨이의 런정페이도 지행합일 정신을 강조했다. 최근 창업자 대상의 한 조사에선 왕양명 사상을 경영에 참고한다는 응답이 78%에 달했다.
AI 혁명과 성리학의 그림자
흥미롭게도 양명학의 궤적은 한·중 양국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중국에선 지행합일의 실천 윤리로 이어졌지만,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조선에선 ‘사문난적’으로 밀려났다.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하라는 철학은 힘을 잃고,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초격변의 시대다. 많은 기업이 새 흐름에 올라타려 하지만, 실무자가 밤새 준비한 기획안은 ‘우리가 역량이 있어?’라는 한마디에 종종 폐기된다. 우리는 여전히 지행합일보다 선지후행(先知後行)을 요구한다. 새 정부는 ‘인공지능(AI) 글로벌 3강 도약’의 비전을 내걸었지만, 완벽한 계획을 요구하는 문화 속에선 레이쥔 같은 기업가가 나오기 어렵다. AI라는 시대의 태풍 앞에서 우리는 아직도 바람의 방향을 재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김영수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