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 “청년 세대 지지해 주고 싶었는데…어르신도 무릎 ‘탁’”

1 week ago 5

김애란 작가. 동아일보 DB.

김애란 작가. 동아일보 DB.
지난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소설가 김애란(45)은 파독 광부, 간호사 출신 교민 1세대 어르신을 모신 낭독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단편소설 ‘홈 파티’를 읽었다.

내용은 이렇다.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동기생들이 모인 어느 우아한 저녁 자리. 이들은 ‘요즘 보육원 아이들이 자립정착금으로 명품 가방을 산다더라’는 얘기를 화제에 올리며 혀를 찬다. 잠자코 듣던 주인공이 그 대목에서 입을 연다.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라 그런 것 같다”고. 비난할 것도, 칭찬할 것도 없는 보통의 마음을 옹호한다.

당시 낭독을 듣던 파독 간호사 한 분이 무릎을 쳤다고 한다. “맞아요. 우리도 이민 가방 딸랑 하나 들고 왔지만, 차(車)는 다 좋은 걸 사려고 했거든요.” 어르신의 삶이 묻어난 독후감이자, 보통의 마음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1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난 김 작가는 “청년 세대들을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쓴 글이 이렇게도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제게도 소중한 배움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홈 파티’를 포함해 단편소설 7편이 수록된 김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문학동네)가 지난달 20일 출간됐다. 2002년 데뷔작 ‘노크하지 않는 집’ 때부터 하숙집, 반지하, 고시원 등 도시의 거주 형태를 면밀히 살펴온 작가는 이번 신간에서 팬데믹 전후 집값 폭등과 동시대인의 내면 풍경을 다뤘다.

작중 인물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지만, 배 아파하는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보통의 윤리의식를 지녔다. 김 작가는 “대부분 인간은 전적으로 선악 한 쪽에 있는 게 아니라, 중간 어딘가에서 도모하고 고민하고 갈등한다”며 “데뷔작 때부터 ‘보통 사람들’이라 불리는 인물에게 애정이 갔다. 과거 소설의 인물들이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정도 위치의 인물들한테 눈이 갔다”고 했다.

작중 인물들은 문득문득 나이 듦을 실감한다. 작가는 언제 그럴까. 그는 배를 짚으며 “소화가 잘 안 될 때?”라 농하고는 “청년 시기라면 그냥 비관했던 것도 이제 ‘거기서 그치면 안 돼’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할 때, 조카나 친구 아이들 얼굴이 떠오를 때”라고 했다. 작품 안에서도 예전에는 조금 더 비관적이었다면 이제는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돌봄 역시 앞으로 천착할 주제로 꼽았다. 김 작가는 “저도 아직 돌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단계는 아니지만, 노화와 질병은 아마 제가 소설을 쓴다면 계속 나오게 될 주제”라며 “(엄마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다녀온 하루를 그린) ‘레몬케이크’ 같은 수록작은 아직 정면을 응시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아서 제가 흘깃 본 풍경을 크로키 하듯 쓴 단편”이라고 했다.

데뷔 때부터 김애란 소설을 설명하는 열쇳말 중 하나였던 ‘유머(humor)’는 2017년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이후 쉬어가는 상태다. 그의 유머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에게 김 작가가 이렇게 안부를 전했다.

“유머는 제가 소설 안에서 무척 사랑하고 미덕이 많은 기술입니다. 작가도 긴 생애 주기가 있으니까요. 영영 잃어버렸다기보단 어떤 시기에는 조금 더 진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까요? 할 수 있으면 초기작의 미덕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웃음).”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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