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은 이렇다. 대학 최고경영자 과정 동기생들이 모인 어느 우아한 저녁 자리. 이들은 ‘요즘 보육원 아이들이 자립정착금으로 명품 가방을 산다더라’는 얘기를 화제에 올리며 혀를 찬다. 잠자코 듣던 주인공이 그 대목에서 입을 연다.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라 그런 것 같다”고. 비난할 것도, 칭찬할 것도 없는 보통의 마음을 옹호한다.
당시 낭독을 듣던 파독 간호사 한 분이 무릎을 쳤다고 한다. “맞아요. 우리도 이민 가방 딸랑 하나 들고 왔지만, 차(車)는 다 좋은 걸 사려고 했거든요.” 어르신의 삶이 묻어난 독후감이자, 보통의 마음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1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사옥에서 만난 김 작가는 “청년 세대들을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쓴 글이 이렇게도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제게도 소중한 배움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홈 파티’를 포함해 단편소설 7편이 수록된 김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문학동네)가 지난달 20일 출간됐다. 2002년 데뷔작 ‘노크하지 않는 집’ 때부터 하숙집, 반지하, 고시원 등 도시의 거주 형태를 면밀히 살펴온 작가는 이번 신간에서 팬데믹 전후 집값 폭등과 동시대인의 내면 풍경을 다뤘다.
작중 인물들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지만, 배 아파하는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보통의 윤리의식를 지녔다. 김 작가는 “대부분 인간은 전적으로 선악 한 쪽에 있는 게 아니라, 중간 어딘가에서 도모하고 고민하고 갈등한다”며 “데뷔작 때부터 ‘보통 사람들’이라 불리는 인물에게 애정이 갔다. 과거 소설의 인물들이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정도 위치의 인물들한테 눈이 갔다”고 했다.
작중 인물들은 문득문득 나이 듦을 실감한다. 작가는 언제 그럴까. 그는 배를 짚으며 “소화가 잘 안 될 때?”라 농하고는 “청년 시기라면 그냥 비관했던 것도 이제 ‘거기서 그치면 안 돼’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할 때, 조카나 친구 아이들 얼굴이 떠오를 때”라고 했다. 작품 안에서도 예전에는 조금 더 비관적이었다면 이제는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돌봄 역시 앞으로 천착할 주제로 꼽았다. 김 작가는 “저도 아직 돌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단계는 아니지만, 노화와 질병은 아마 제가 소설을 쓴다면 계속 나오게 될 주제”라며 “(엄마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다녀온 하루를 그린) ‘레몬케이크’ 같은 수록작은 아직 정면을 응시하기엔 용기가 나지 않아서 제가 흘깃 본 풍경을 크로키 하듯 쓴 단편”이라고 했다.데뷔 때부터 김애란 소설을 설명하는 열쇳말 중 하나였던 ‘유머(humor)’는 2017년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이후 쉬어가는 상태다. 그의 유머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에게 김 작가가 이렇게 안부를 전했다.
“유머는 제가 소설 안에서 무척 사랑하고 미덕이 많은 기술입니다. 작가도 긴 생애 주기가 있으니까요. 영영 잃어버렸다기보단 어떤 시기에는 조금 더 진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까요? 할 수 있으면 초기작의 미덕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웃음).”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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