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위조 민주주의’에 취했던 대통령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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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2024년 세계대전망’에서 소개했던 ‘위조 민주주의(counterfeit democracy).’ 민주주의 쇠퇴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를 굳히는 가운데 2024년엔 그 중에서도 선거조작으로 정권을 잡고 또 유지하는 위조 민주주의가 우려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말 예견했다.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조사를 받기 위해 공수처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과 지난해 11월 명태균 씨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창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모습. 동아일보DB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조사를 받기 위해 공수처 청사로 들어가는 모습과 지난해 11월 명태균 씨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창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모습. 동아일보DB
뒤늦게 그 용어를 발견하고 나는 혼자 부르짖었다. 아니, 영국은 여론조사를 조작(위조)해 대통령까지 만든 ‘명태균 게이트’를 어찌 알고 위조 민주주의를 미리 주목했단 말인가.

위조 민주주의로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15일 공수처에 체포되면서 선거조작, 즉 위조 민주주의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음을 주장하는 글을 남겼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더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 여론조작으로 흥한 장님 무사-앉은뱅이 주술사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그는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선관위의 엉터리 시스템도 다 드러났다”고 했다. “혼자서는 엄두도 내기 힘들다. 기껏해야 금품 살포, 이권 거래, 여론 조작 등일 것”이라고 굳이 부연 설명한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여론 조작과 김영선 전 의원 공천 거래 등이 벌어진 명태균 게이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은연중 변명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자필로 쓴 ‘국민께 드리는 글’. 15일 공수처에 체포된 직후 윤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게시됐다. 출처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 자필로 쓴 ‘국민께 드리는 글’. 15일 공수처에 체포된 직후 윤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게시됐다. 출처 윤석열 대통령 페이스북
명태균의 여론 조작은 15일 또 드러났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을 앞둔 2021년 10월 5일 김건희는 명태균에게 “이러다 홍(홍준표 후보)한테 뺏기는 거 아닐까요ㅠ (윤석열 후보가) 야당 1후보는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문자를 보냈더니 명태균은 “네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답했다. 이태원 참사 뒤에도 김건희가 나서 “어찌하면 좋을까요” “사태 파악은 다 됐으니” 하며 명태균의 조언까지 구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대선 전 7월 3일 명태균이 미공표 여론조사 자료를 보내며 “보안 유지 부탁드립니다” 문자를 보내자 김건희가 “넵 충성!”이라고 답한 데서 재차 확인됐다. 불법에 ‘충성’으로 화답한 것이다. ‘장님 무사’가 윤석열, ‘앉은뱅이 주술사’가 김건희라더니 그 꼭대기엔 ‘여론조작 도사’ 명태균이 올라앉았던 꼴이다.

● 중국에 항의 않고 왜 우리나라에 계엄선포?

그럼에도 윤석열은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을 연결시키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이를 시도하고 추진하려는 정치세력의 국제적 연대와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썼다. ‘권위주의 독재 국가, 전체주의 국가’가 주변국 정치인 매수와 선거 개입 등의 정치전, 디지털 시스템을 공격하는 사이버전 등 하이브리드 전술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의 야당이 이들과 손잡고 총선에서 대승했고, 지금 입법독재로 국정을 마비시키는 비상사태를 만들고 있어 대통령으로서 비상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 모습.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 모습.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제공
나라 이름은 입 밖에 내지 않았어도 그가 중국이나 북한을 지목했다는 건 능히 짐작된다. 하이고. 윤석열은 대선 때 ‘1일 1실언’(지금 생각하니 그게 윤석열의 본질이었다)으로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민심을 상당수 까먹었다. 2024년 총선 때는 의료 대국민담화까지 내놓아 온 국민 열받게 만든 사실도 다 까먹은 게 분명하다.

물론 중국이 세계를 상대로 통일전선공작, 직간접적 총선개입 및 조작 시도, 여론전·미디어전·인지전, 외교전, 경제전, 정치전 등 초한전(超限戰) 전법을 구사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통령 윤석열은 캐나다처럼 중국에 당당하게 항의하거나, 2023년 독일처럼 “중국이 독일을 조종하려는 시도를 막을 것”이라고 선언했어야 했다. 그것도 못하면서 중국도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한번 선포하고 입때껏 안하는 비상계엄을, 윤석열은 방구석 여포처럼 왜 우리나라에 대고 선포했느냐 말이다.

● 천안함 음모설 믿는 좌파와 뭐가 다른가

여기서 선거조작이 맞다 아니다, 음모론이다 아니다를 논하지 않겠다. 백만 자를 쓴대도 설득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 여름 윤석열이 임명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김용빈 사무총장이 윤석열의 서울법대 동기다. 오죽하면 9일 국회 출석한 김용빈이 우리 시스템 상 설령 부정선거가 있다 해도 사후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구구히 설명하자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동기이고 친구인데 왜 진작 그렇게 설명하지 그랬느냐”고 한탄을 했겠나.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동아일보DB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동아일보DB
다만 음모론도 정파에 따라 믿는 바가 다르다는 최근 연구결과만은 전해야겠다. ‘음모론 신뢰의 결정 요인’이라는 이병재, 조화순, 김범수 연세대 교수의 2024년 논문이다. 2021년 서베이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좌파일수록 천안함 음모론을 믿고, 우파일수록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더라는 쨍한 내용이다.

먼저 “천안함은 북한군 어뢰에 의해 피격된 것이 아니다”라는 ‘천안함 음모론’. 당연히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724명)가 동의(276명)보다 훨씬 많다. 동의하는 이들의 주관적 이념을 보니 진보 성향일수록 천안함 음모론을 믿는 경향이었다.

다음은 “2020년 21대 총선은 부정선거였다”라는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788명)가 동의(212명)보다 훨씬 많다. 동의하는 이들의 이념을 보니, 하하 역시 보수 성향일수록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왜냐. 좌파는 친북적이고 우파는 그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 음모론은 죽지 않는다…음모론자 죽을 때까지

이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팟캐스트, SNS 링크 및 유튜브를 더 많이 본다는 거다(그러니까 제발 종이신문을 보시라는 것이어요ㅠㅠ). 당연히 보수 성향은 보수 쪽 컨텐츠를, 진보 성향은 진보 쪽 컨텐츠를 주로 본다. 그래서 신문 방송 안 보고 그저 극우 유튜브에만 골몰했던 윤석열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져 계엄 선포라는 천인공노할 짓을 자행한 것이다.

천안함 피격 1년을 맞던 2011년 3월 18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를 찾은 시민과 군인들이 천안함 잔해를 살펴보는 모습. 천안함 잔해가 북한 어뢰 공격을 입증함에도 좌파일수록 ‘천안함 음모설’을 아직도 신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안함 피격 1년을 맞던 2011년 3월 18일 경기 평택시 해군2함대를 찾은 시민과 군인들이 천안함 잔해를 살펴보는 모습. 천안함 잔해가 북한 어뢰 공격을 입증함에도 좌파일수록 ‘천안함 음모설’을 아직도 신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이놈의 음모론은 불치병에 가깝다. 이성의 회복? 맹신자에겐 불가능하다.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태에 대해 한국과 미국, 호주, 영국, 스웨덴 전문가들의 민군합동조사단이 그해 5월 “북한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폭발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아직도 27.6%가 안 믿는 상황이다. 미국 국무부가 2018년에도 ‘천안함 사태는 한국의 조작극’이라는 북한 주장을 일축했어도 못 믿는다. 어떤 증거를 들이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은.

부정선거 음모론 역시 다르지 않다. 중국이나 북한이 패망하고 그쪽 최고지도자가 제 입으로 “선거조작 안했다”고 자백한대도, 음모론자들은 결코 안 믿을 것이다. 나중엔 우주의 기운이 자기네가 추종하는 정당만 패배시킨다고 믿을지 모른다. 좋게 말해 확신범, 쉽게 말하면 일종의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 국힘은 당명부터 바꾸라. ‘수구(꼴통)의힘’으로

윤석열은 2022년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정치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고 연설했다.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는 반지성주의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제 입으로 분명히 내뱉었다.

그가 한 입으로 두 말한 적이 한두번도 아니지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음모론이야말로 위험하다. 반이성주의와 함께, 그리고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틀렸다는 이분법과 함께 작동해 폭력과 테러를 불러올 수 있다. 서울법대를 나와 검찰총장까지 지낸 대통령이 음모론에 빠져 국회를 해산시킨다며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마침내 탄핵심판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윤석열은 세계역사에 더럽게 기록될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윤석열을 싸고도는 국민의힘 상당수 의원들과 일부 국민이다. ‘이재명은 더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마시라. 그건 다음 문제이고, 당신들이 떠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제 국민 앞에 무장군인을 동원한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하겠거든, 더는 ‘국민’ 욕보이지말고 당명부터 바꾸기 바란다. ‘태극기의힘’이나 ‘기득권의힘’, 아니면 쨍쨍하게 아름다운 ‘해바라기당’도 좋다. 차라리 솔직하게 ‘수구(꼴통)의힘’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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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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