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집 15채값에 조선백자 日유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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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 15채값에 조선백자 日유출 막았다

입력 : 2026.04.13 17:36

간송미술관 '문화보국'展
조선인 출입 막힌 미술 경매
일본인 대리인 내세워 낙찰
'군수월급 200배' 거액 베팅
일제시대 경매 최고가 기록
경매장서 지킨 문화재 전시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간송미술문화재단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간송미술문화재단

1936년 11월 22일, 미술경매사 경성미술구락부에서는 조선 백자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 일본의 무역상 야마나카 상회와의 경쟁 끝에 이 백자는 사상 최고가인 1만4580원에 개인에게 낙찰됐다. 기와집 15채 값에 달하는 금액으로 당시 군수 월급(70원)의 208배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경합의 승자는 간송 전형필이었다. 조선인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공간에서 그는 일본인 신보 기조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우리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막았다.

간송미술관은 오는 15일부터 6월 14일까지 봄 전시 '문화보국: 신념으로 지켜낸 우리의 일'을 연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경성의 고미술 시장에서 일본으로 유출될 위기에 놓였던 문화유산 36건 46점을 간송이 되찾은 과정을 조명한다. 1922년 일본인 골동상들이 설립한 경성미술구락부는 조선 최대의 미술품 거래 기관을 표방했지만, 사실상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주요 통로였다.

이곳에서 간송은 1930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인 중개인을 내세워 우리 문화재를 지켜냈다. 특히 최고가를 기록했던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은 현재 국보로 지정돼 있다. 청화·철채·동채로 곤충과 국화를 그린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소성 온도를 요구하는 코발트와 철, 구리 안료를 완벽히 구현해 조선 백자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당시 경매 현장을 지켜봤던 수집가 박병래는 1973년 "그때 1만원이면 요즈음의 1억원쯤 되는 돈"이라며 "이조백자 하나를 1만4000여 원에 낙찰시킨 전형필의 쾌거에 일본인도 감격했다"고 회고했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경매 도록 실물도 전시된다.

고려청자가 1920년대 대부분 유출된 상황에서 간송은 1930년부터 백자 수집에 집중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경매를 통해 확보한 명품 백자들이 공개된다. '백자희준'은 세련된 조형미를 자랑한다. '백자청화국모란매화문궤형연적'은 자물쇠까지 정교하게 표현해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다.

간송은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조선 서화도 적극 수집했다. 조선 말기 천재 화가 장승업의 '팔준도', 김명국의 '비급전관' 등이 소개된다. 추사 김정희와 그를 따랐던 추사화파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추사의 서예인 '침계'와 '사야', 추사의 제자인 전기의 '고람유묵'과 유재소의 '죽리시의' 등이 전시된다.

한국전쟁 이후 유실됐다가 다시 찾아온 작품들도 포함됐다. 해방 이후 간송은 문화유산이 국내에서만 유통될 것이라고 믿고 수집을 중단했으나 한국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피란하던 시기 보화각 소장품 일부가 사라지자 재입수에 나섰다. 이용림의 '서당아집도', 조선과 중국 문인의 우정을 담은 '미사묵연' 화첩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되찾은 작품이다.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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