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5600만t. 국내 대표 철강회사 포스코가 2024년 제철소 가동을 위해 강과 댐 등에서 당겨쓴 물의 양이다. 고온의 쇳물을 다루는 용광로를 냉각하기 위해 하루 평균 43만t을 사용했다. 포스코는 한 해 물 소비량, 재사용량, 방수량 등 수자원 현황을 정밀하게 계산해 지난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넣었다. 포항·광양제철소 인근 지역사회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도 분석했다.
포스코가 큰 노력을 기울여 수자원 현황을 조사한 건 환경 보호와 사회공헌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물 사용량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재무적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지역 용수가 고갈되면 제철소 가동이 중단되거나, 생산량이 급감하는 조업 마비로 이어진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시장의 핵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자연자본’ 공시의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 생존 가르는 천연자원
31일 경제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은 오는 10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글로벌 자연자본 공시 가이드라인 발표를 앞두고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연자본이란 숲, 물, 토양, 공기 등 경제 활동에 필요한 자연 생태계 자원을 뜻한다. 2021년 주요20개국(G20) 지속가능금융 로드맵에 자연자본 공시가 포함된 이후,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NFD)’를 중심으로 기업이 자연 관련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공시에 포함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자연자본은 단순한 환경보호를 넘어 실제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핵심 요소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물, 산림 등 과거엔 당연하게 여겨졌던 천연자원이 이상기후 등으로 치명적인 ‘사업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 ISSB가 TNFD를 흡수하면서 자연자본 공시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현재는 지역과 산업에 따라 공시 기준이 제각각인데, ISSB가 오는 10월 자연자본 공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하면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글로벌 표준’이 생긴다. ISSB는 기업 부담을 고려해 자연자본 공시를 의무가 아니라 권고사항으로 두기로 했지만, 글로벌 투자사가 기업에 이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질 전망이다. 자연자본 공시를 하지 않으면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는 아직 걸음마 단계
해외에서는 이미 700여 개 글로벌 기업·기관이 자발적으로 자연자본 공시에 뛰어들었다. 소니(전자기기), 볼보(자동차), 이케아(가구), 아스트라제네카(바이오·제약), 케링(명품) 등이 대표적이다. TNFD 권고안에 따라 공시하고 있는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9조달러(약 1경3000조원·지난해 말 기준)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블랙록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TNFD 데이터를 투자 심사에 반영하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국내 산업계의 대응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KB·신한·하나·우리 등 대형 금융지주사와 SK증권 등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자연자본 공시가 점차 확산하고 있지만, 아직 자연 생태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제조업에서는 움직임이 미미했다. TNFD에 공식 가입한 제조업체는 포스코홀딩스, 포스코퓨처엠, SK, 삼성바이오로직스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자연자본 공시는 원료 채굴부터 부품 조달까지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생태계 영향을 추적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라 선제적으로 데이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연자본
숲, 물, 토양, 공기 등 자연뿐 아니라 탄소 흡수, 물 정화, 생물 다양성 유지 등 경제 활동에 필수적인 자원과 생태계 서비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11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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