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파리의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그러나 불로뉴 숲 안에 자리 잡은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앞에서 관람객들은 잠시 다른 계절을 느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돛단배 모양의 건물 외벽에 적힌 핑크빛 문장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기억하라, 그들은 봄은 막을 수 없다.”
짧지만 깊은 울림을 던지는 이 문장은, 올해 87세가 된 데이비드 호크니가 팬데믹 시절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아이패드로 그린 드로잉의 제목이자, 그의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선언이었다.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생명의 귀환이자, 억압 속에서도 피어나는 창작의 은유였다. “데이비드 호크니, 25” 전시는 그 봄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걸쳐온 그의 도전과 실험의 궤적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호크니는 1937년 영국 요크셔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났다. 그가 청년기를 보낸 1950~60년대 영국은 보수적이었고, 동성애는 범죄였다. 1952년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화학적 거세를 당한 뒤 불과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에니그마’ 해독으로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했음에도, 국가는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왕립예술학교 재학 중이던 호크니는 1961년 “We Two Boys Together Clinging”을 발표했다. 월트 휘트먼의 시에서 제목을 딴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화폭에 드러냈다. 당시 사회는 이런 친밀함을 언어로 말하게 두지 않았으나, 호크니는 붓으로 발화했다. 말할 수 없었던 사랑이 색채와 형상 속에 모습을 드러낸 이 작품 앞에 서서 20대 청년인 호크니가 느꼈을 위협과 억압을 생각해 보았다.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에 예술은 또 다른 언어가 되었고, 이 작품은 영국 법제와 사회적 시선을 향한 호크니의 도전장이었다.
1967년 「성범죄법(Sexual Offences Act)」 개정으로 동성애는 제한적으로 비범죄화되었지만, 제도적 변화에도 낙인은 오래 지속됐다. 예술의 자유는 법전의 몇 줄로 보장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서의 해방
1964년, 호크니는 런던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강렬한 햇살과 수영장, 야자수의 풍경 속에서 그는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발견했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보라, 풀장 옆의 빈 의자, 젊은 남성의 나른한 뒷모습은 억압을 벗어난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대표작 <A Bigger Splash>(1967)은 정적인 건축과 순간의 물보라를 대비시켜 자유의 찰나를 시각화했다. 또 다른 대표작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에서는 수영장 가장자리에 선 한 남자가 물속의 남성을 내려다본다. 수영장은 해방의 공간이지만, 수영하는 연인 피터 슐레진저를 바라보는 호크니의 시선 속에는 거리와 긴장이 공존한다.
끊임없는 시도와 확장 ― 창조를 향한 자유
호크니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1980년대 초 그는“Joiners”라 불리는 사진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다. 수백 장의 사진을 병렬로 이어 붙여 단일 시점을 해체하며, 세계는 한 번의 스냅샷으로 포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2007년 그는 영국 요크셔 숲 풍경을 40개의 캔버스로 이어 붙여 가로 12미터가 넘는 대작 “Bigger Trees near Warter or/ou Peinture sur le Motif pour le Nouvel Age Post-Photographique”을 완성했다. 겨울나무들이 빽빽이 선 장면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숲속 체험으로 초대한다.
그는 인상파의 ‘현장 스케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사진이 지배하는 시대 이후에도 회화가 여전히 새로운 지각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진이 하나의 시점으로 세계를 고정한다면, 그의 회화는 움직이는 인간의 시선을 다층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호크니는 말한다. “회화는 사진이 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한다.” 이는 법학적 관점에서, 예술의 자유가 단순한 재현의 자유가 아니라 새로운 지각과 경험을 창조할 권리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는 오페라 무대 디자인에서도 실험을 이어갔다. 푸치니의 투란도트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무대에 회화적 색채와 공간을 주입해 관객이 음악을 ‘보는’ 경험하도록 했다.
팬데믹 속 노르망디의 봄
2020년, 팬데믹이 전 세계를 멈춰 세웠다. 국경이 닫히고 도시가 봉쇄되었으며 전시가 취소되었다. 호크니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농가에 머물며 매일 아이패드로 꽃과 하늘, 나무와 빛을 그려 지인들에게 보내며 “봄 소식”을 전했다. 그의 드로잉에는 사과꽃의 연둣빛, 봄비, 아침 햇살이 담겼다. 전통적 유화의 두께 대신, 디지털의 경쾌한 선으로 포착된 노르망디의 봄은 단절 속에서도 이어지는 생명과 창조의 증거였다.
특히 “The Arrival of Spring, Normandy, 2020” 시리즈 가운데 수련을 그린 작품은 모네의 지베르니 연못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호크니의 수련은 수십 년의 붓질 끝에 완성된 대작이 아니라, 아이패드 화면 위에서 즉각적으로 그려낸 선과 색의 울림이다. 19세기 인상주의가 빛의 순간을 붙잡았다면, 21세기의 호크니는 디지털 도구로 계절의 흐름을 일기처럼 기록했다. 이 수련은 모네의 연못과 호크니의 정원 사이에서 시대를 가로지르는 대화가 되었고, 전통과 실험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그의 확신은 분명했다. “봄은 막을 수 없다.” 이는 단순한 자연의 귀환이 아니라, 억압과 단절 속에서도 이어지는 창작의 증언이었다.
예술의 자유의 발전
1919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 제142조는 “예술, 학술 및 교육은 자유로 한다. 국가는 이를 보호하고 조성에 참여한다”고 규정했다. 세계 최초로 예술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차원을 인식한 결과였다. 나치 시대에 그 자유는 무너졌으나, 1949년 독일 기본법 제5조 3항은 “예술과 학문, 연구와 교육은 자유롭다”고 다시 선언했다.
예술의 자유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함께 지닌다. 소극적 자유는 검열·형사처벌로부터의 자유이며, 적극적 자유는 창작·발표·향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의 보장이다. “We Two Boys Together Clinging”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여준다면, “The Arrival of Spring”은 창작할 수 있는 자유를 드러낸다. 한국 헌법 제22조 역시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헌법은 언어로 자유를 선언하고, 예술은 언어 너머에서 그 자유를 증언한다.
향유의 자유 ― 예술은 나눌 때 완성된다
호크니는 말했다. “예술은 공유에 관한 것입니다. 경험이나 생각을 나누고자 하지 않는다면 예술가라 칭할 수 없죠.”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27조의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는 문화를 향유할 권리와 일맥상통한다. 예술은 나눌 때 완성된다.
호크니의 작품은 유쾌하다. 두 명의 호크니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분위기가 매우 다른 의자에 앉아 자신이 그린 크고 작은 꽃 정물화 액자가 걸린 짙푸른 벽을 바라보는 그림은 관람객을 웃음 짓게 한다. 20개의 꽃병, 아니 정면 탁자에 놓인 한송이의 장미가 꽂힌 꽃병까지 21개의 꽃병이 있고, 호크니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제목은 “25th June 2022, Looking at the Flowers (Framed)”이다.
관람객은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보다 능동적인 제3의 대화자가 되고 마치 바로 옆에 호크니가 앉아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작품은 예술이 혼자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창작자와 향유자의 대화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 듦으로부터의 자유
호크니는 지금 87세다. 그러나 여전히 매일 아침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작품 선정과 배치 그리고 기획에 직접 개입했다. 그리하여 이번 전시는 그가 회고하는 자서전이자 현재진행형 무대가 되었다. 전시를 기획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재단 회장은 76세, 큐레이터 노먼 로젠탈은 80세,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96세였다. 모두 나이를 넘어 창작과 기획의 무대에 섰다. 법도, 제도도, 나이도 봄을 막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정년제도는 60세 전후로 창작과 연구의 자유를 가로막는다.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예술의 자유와 제도적 현실이 충돌한다. 호크니가 보여준 것은, 나이와 무관하게 자신의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점이다. 예술에는 정년이 없다.
막을 수 없는 봄
호크니의 전시회는 우리에게 세 가지 자유를 일깨운다. 먼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로, 침묵을 강요당할 때 예술로 발화할 권리이다. 둘째, 창조를 향한 자유로, 언어가 닿지 못한 세계를 색채와 형상으로 열어갈 권리를 보장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가 예술을 함께 나누는 향유의 자유이다.
호크니의 청년기를 옥죄었던 것이 영국 형법이었다면, 노년기를 가로막았던 것은 팬데믹이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다른 계절을 찾아 나섰다. 권력과 검열, 사회적 편견, 전쟁과 팬데믹을 넘어, 그는 봄을 증언했다. 봄은 계절의 이름이자, 법과 제도가 막을 수 없는 창작의 시간이다. 예술의 자유는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 삶과 일상 속에서 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유를, 2025년 여름 호크니의 그림 앞에서 다시 확인한다.
김현진 법학자•인하대 로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