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국내 판매량, 28년 만에 현대차 첫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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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경성정공으로 시작한 기아가 1998년 현대자동차에 인수될 때만 해도 시장의 시선은 싸늘했다. “부실 덩어리를 떠안았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후엔 그룹의 ‘보급형 브랜드’이자 현대차의 동생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그랬던 기아가 지난달 현대차를 꺾고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완성차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시장 수요가 세단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옮겨간 것을 선제적으로 공략한 결과다. 촘촘하게 갖춘 전기차 라인업이 고유가 흐름과 맞물린 것도 판세를 뒤집은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아 국내 판매량, 28년 만에 현대차 첫 추월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아의 국내 판매량은 5만5045대로 현대차(5만4051대)를 앞섰다. 1998년 현대차그룹에 합병된 이후 처음이다. 기아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9% 늘어났지만 현대차는 19.9% 급감했다.

일등 공신은 기아의 중형 SUV 쏘렌토다. 쏘렌토는 2024년과 지난해 2년 연속 현대차의 간판 세단 그랜저를 제치고 베스트셀링카 1위에 올랐다. 지난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간 판매 10만 대를 돌파한 차종도 쏘렌토다. 승차감 문제로 외면받던 SUV가 넓은 공간과 개선된 주행 성능을 앞세워 패밀리카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란 흐름을 읽은 덕분이다. 현대차는 SUV 모델을 추가하면서도 그랜저, 쏘나타 등 세단 중심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이런 전략 차이는 SUV 판매량에서도 드러난다. 올해 1~4월 기준 기아 쏘렌토(3만9000대)와 스포티지(2만327대) 판매량은 현대차 투싼(1만5014대), 팰리세이드(1만3631대)를 압도했다. 하이브리드카 모델을 추가한 기아 카니발(1만9392대)도 판매 실적을 견인했다.

고유가 흐름 속에서 다각화한 전기차 라인업도 승부처가 됐다. 기아의 4월 누계 전기차 판매량은 4만8238대로 전년 동기 대비 170.6% 폭증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44.9% 늘어난 2만4785대에 그쳤다. 기아와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중대형(아이오닉 5·6·9) 중심인 현대차와 달리 기아는 소형(EV3)부터 대형(EV9)까지 차급별 ‘풀라인업’을 갖춰 소비자 선택 폭을 넓혔다는 평가다. 현대차에 없는 목적기반차량(PBV) ‘PV5’도 4월까지 1만 대 팔리며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안전공업 화재에 따른 생산 차질도 격차를 키웠다. 기아는 모닝, 스토닉 등에서 2만 대 가까운 차질이 발생했지만 대체 공급처 확보와 전기차 물량 전환으로 피해를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현대차는 기아보다 생산 차질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의 선전은 글로벌 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미국 시장에서 기아는 2년6개월 만에 현대차 판매량을 추월했다. 북미에서 하이브리드 모델이 적기에 투입된 스포티지와 텔루라이드가 실적을 이끌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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