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크립토네이션] 금가분리 완화 '만시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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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디지털자산센터장]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7년 12월, 당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가상통화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주재한 뒤 “가상통화 투기 과열로 인한 피해자를 막겠다”며 긴급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가파르게 뛰는 코인 가격을 억눌러 투기를 막겠다는 정부의 긴급조치는 크게 다섯 가지였습니다.

△미성년자와 외국인의 거래 제한,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규제 강화, △가상통화 계좌 실명확인제도 도입 검토, △가상통화 투자수익에 대한 과세 방안 검토 등이 주요 조치였지만, 그 중 단연 첫번째는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매입·담보취득·지분투자 전면 금지였습니다. 이 조치는 나중에 ‘금가분리’(전통금융과 가상자산 분리)로 불리며 지금까지 9년 간 흔들림 없는 원칙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서슬퍼른 금융당국의 규제 앞에, 우리 금융회사들은 이 기간 동안 자신들은 물론이고 자회사를 통해서라도 가상자산 거래소 경영이나 투자, 가상자산 수탁(커스터디), 지갑서비스, 가상자산공개(ICO) 등 가상자산과 관련 있어 보이는 사업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은행법, 자산시장법, 특정금융정보법은 물론이고 어떤 감독 규정에도 명시적 조항 한 줄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던 금가분리 규제가 완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국내 1위 간편결제사업자인 네이버파이낸셜과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기업결합을 발표하며 금가분리 저촉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올 초에는 국내 1위 금융투자회사인 미래에셋그룹이 비금융 자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경영권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금가분리 무력화 애기까지 나온 뒤입니다.

지난 21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가분리는 2017년 말 가상자산 투기 대응 조치의 일환으로 금융사의 가상자산 참여를 제한한 것”이라며 “현재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도화와 입법이 추진되는 만큼 바뀐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가상자산 거래소 규율 체계 정비,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을 함께 보면서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실상 금융회사의 가상자산시장 참여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발언으로 읽힙니다.

금가분리 규제 일지 (그래픽= 클로드 생성)

특히 하나은행이 두나무에 1조원 넘는 자금을 투입해 5대주주로 합류하는 것을 비롯해 두나무 지분 추가 취득을 통해 3대주주가 되는 한화투자증권, 삼성SDS와 함께 두나무 지분 4%를 확보하기로 한 삼성증권과 삼성카드,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인 OKX와 함께 국내 3위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 지분을 20%씩 인수하기로 한 한국투자증권 등 전통금융사들의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확보전은 당국과의 사전 교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행보였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금융당국이 달라진 시대상을 감안해 금가분리 규제를 풀어 보겠다고 나선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미 주식과 가상자산 거래를 모두 취급하며 젊은 투자자층을 끌어 모으고 있는 ‘슈퍼앱’ 로빈후드나 가상자산에서 시작해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토큰화증권 등을 총망라하겠다는 코인베이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거래까지 중개하기 시작한 미국 최대 증권사 찰스슈왑, 가상자산 ETF와 토큰화 사업에 적극적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보고 있노라면 만시지탄(晩時之歎·때가 늦었음을 안타까워하며 뒤늦게 탄식함)이 앞섭니다.

사실 이억원 위원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금가분리 규제 완화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과 같이 움직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금융당국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규제를 풀어 보겠다는 능동적 접근보다는 시대적 변화와 업계의 압박에 떠밀린 수동적 접근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AI)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망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것처럼 특례조치로 발빠르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입법 이전에 금융당국은 은행과 증권사들의 가상자산사업자(VASP) 지분 투자를 눈 감아 주는 정도 외에는 어떤 일에도 적극 나서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금융회사들 입장에서는 지분을 어느 선까지 취득해야할지, 신규가 아니라 과거에 이미 가지고 있던 소수지분을 추가로 취득하는 건 어떻게 봐야할지 등 애매한 구석이 여전할 겁니다. 더구나 첫 업권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입법되지 않는 한 가상자산시장에서 각자 플레이어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래서 어떤 기준으로 어떤 라이선스를 받도록 할 것인지 아무도 명확히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울러 추가 규제 완화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질 걸로 보입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체제가 완비되고 나서도 우리 금융당국이 전향적으로 은행이나 증권사가 직접 VASP 라이선스를 취득해 커스터디나 지갑사업 등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고, 금융지주사나 은행이 VASP 기업 지분을 50% 이상 보유해 직접 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도록 하는 추가 법 개정도 낙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참에 금융당국은 정부안조차 제시하지 않았던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과정에서의 소극성을 버리고, 9년 묵은 금가분리 규제를 어떤 단계와 속도로 풀어나갈 것인지 로드맵을 스스로 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지분 투자 허용 정도로는,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함께 감내하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나 토큰화증권 발행 및 유통 활성화를 위한 혈맹을 구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금가분리 원칙을 전면적으로 허물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자본력과 내부통제, 소비자 보호 체계를 갖추는 것을 전제로 가상자산 커스터디와 지갑 서비스, 발행 및 유통 등 사업 영역을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시장 플레이어들도 금융시스템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감안한 신산업 채비를 할 수 있습니다. 9년 전 금가분리가 올바른 판단이었다면, 이제 달라진 시대상과 글로벌 규제 환경을 인정한 금융당국 스스로가 전통금융과 가상자산 간의 건전하고 균형있는 결합을 주도해야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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