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신하연 기자] 한국거래소의 기술특례 상장 문턱이 높아졌다는 업계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거래소가 암묵적으로 최소 매출액 기준을 100억원으로 높이고 기술 평가 기준도 엄격해졌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상장 예비심사를 철회하는 기술특례 기업이 급증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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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일대, 증권가 모습. (사진=연합뉴스) |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1년(2024년 3월14일~2025년 3월14일) 코스닥 신장 신규 상장을 위해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스팩·스팩합병 제외) 108개 중 심사를 철회한 기업은 31개사로 집계됐다. 이 중 기술특례로 상장을 추진하던 기업은 16개사로 전체의 51.2%에 달했다.
특히 올 들어 상장 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한 레드엔비아, 메를로랩, 영광와이케이엠씨, 레메디, 아른, 에이모, 엠아이티 등 7곳 중 영광와이케이엠씨와 아른을 제외한 5곳이 기술특례 기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예비심사를 철회한 기술특례 기업은 식신 1곳뿐이었다.
기업공개(IPO) 시장 분위기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라앉은 탓도 있지만, 대부분 공모 단계가 아닌 예비심사 단계에서 자진 철회했다는 점에서 거래소의 심사가 강화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철회 기업 대부분은 매출이 적거나 거의 없어 거래소의 심사 기준을 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5개 기업 중 2023년 사업보고서 기준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고 영업이익도 대부분 적자였다.
지난 1년 사이 청구서 접수 후 심사 대기 중인 20개사 중에서도 상장을 중도에 포기하는 기업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0월 예심 청구서를 접수한 기업 중 기술특례로 상장을 추진하는 제노스코와 아우토크립트의 경우 심사가 지연되면서 상장규정 상의 심사기간(45영업일)을 넘긴 상태다.
반면 같은 달 심사를 신청한 한텍, 키스트론 등은 물론 아우토크립트보다 늦게 심사를 청구한 파인원 등 일반상장 기업은 이미 심사 승인 결정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예심 청구서를 접수한 기술특례 상장기업 링크솔루션 역시 뒤이어 신청서를 접수한 바이오비쥬, 쎄크 등과 달리 심사 승인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공모가 ‘뻥튀기’ 논란을 빚었던 파두를 시작으로 상장 8개월 만에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시큐레터 등 기술특례 상장기업들의 논란이 부각되자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심사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평가기관들이 거래소로부터 기술평가 점수를 높게 주지 말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며 “기술특례 상장 기업의 암묵적인 매출액 기준이 100억원이라는 이야기가 증권사 IPO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당국이 지난 1월 코스닥 시장 상장유지를 위한 매출액 기준을 기존 30억원에서 2029년까지 1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거래소에서도 해당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기업이 애초에 상장되지 않게끔 조절에 나섰다는 주장이다.
상장을 준비 중인 한 성장기업 대표는 “올 들어 공모주 시장 분위기가 개선되면서 초기 투자한 벤처캐피털(VC)들이 상장 계획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거래소 심사가 까다롭다보니 예심을 청구해도 상장 승인까지 기한이 많이 걸릴 것이고, VC들도 엑싯(Exit)하지 못하고 묶여있는 자금이 많아 추가로 투자를 유치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기술특례 상장은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초기 매출이 적은 기업들에게 상장과 자금조달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라며 “매출액 기준을 높게 설정한다고 하면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다만 이같은 주장에 대해 거래소는 “상장 요건을 수정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최근 정부가 코스닥 시장의 퇴출 기준을 ‘매출 100억원 미만’으로 강화하면서 시장에서 일부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