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어떤 키보드가 사무실에서 쓰기 좋을지 알아보려 타건샵에 왔어요. 너무 시끄럽지 않으면서 예쁘고 보글보글 소리가 나는, 쓰면 기분 좋아지는 키보드를 찾으려고요."
20대 직장인 송예진 씨는 지난 9일 오후 7시경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 타건샵 '세모키'에서 여러 키보드를 눌러보며 이 같이 말했다. 송 씨는 이미 10만원대 기계식 키보드를 갖고 있는 키보드 덕후 입문자다. 송 씨는 "집에 기계식 키보드가 있지만 별로 안 쓰게 되더라. 그래서 사무실용을 하나 더 구비하려 한다"며 "앞으로 계속 키보드를 사 모을 것 같다"고 했다.
함께 타건샵을 찾은 20대 직장인 김도영 씨도 사무실용 기계식 키보드를 알아보러 왔다고 했다. 그는 "타격감 있는 키감(키보드 누를 때 드는 느낌)을 좋아해서 너무 조용한 것보다는 살짝 '치는 맛' 있는 제품을 찾는다"면서 "사무실에서 써야 하니 너무 시끄럽지도 않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키보드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MZ(밀레니얼+Z)세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기계식 키보드'가 사무실 효자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주로 게이밍 키보드로 주목받던 기계식 키보드가 PC방에서 사무실 안까지 들어오게 된 이유는 '커스텀'과 '스트레스 해소'에 있다.
직장인들의 손 끝에 가장 오래 닿는 물체는 바로 키보드다. 타자를 칠 때마다 나는 '보글보글', '도각도각', '딸각딸각' 등의 소리가 나는 청각적 요소부터 '쫀쫀', '초콜릿을 부러뜨리는 느낌' 등의 경험을 제공하는 촉각적 요소까지 다양한 재미가 있다는 것이 덕후들 설명이다.
구독자 1만명을 보유한 정보기술(IT) 유튜버 '만송이지EZ'는 "하루에 10시간씩 검색하고, 계산하고, 사과하고, 보고하고, 회의록 쓰고, 온종일 키보드랑 붙어산다"며 "키보드 하나만 잘 골라도 업무의 질이 달라진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기계식 키보드의 세계에 눈을 떴다"고 설명했다.
기계식 키보드는 구성 방식에 따라 청축, 갈축, 적축, 무접점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고 누르는 압력과 소리도 키보드마다 다르다. 작은 화면이 달린 키보드부터 투명, 파스텔 키캡까지 디자인도 다채롭다. 키캡을 일일이 바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키보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용자마다 다양한 취향을 저격한 덕에 기계식 키보드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다. 실제로 이 매장은 방문객이 늘어 입점 4개월 만에 확장 이전했다. 지난해 7월 전자랜드 본관 3층에 문을 열었는데 같은해 10월 본관 1층으로 옮겼다. 이달 기준 방문객 수는 매장을 연 지난해 7월보다 7배 이상 늘었다는 귀띔이다.
전자랜드 관계자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MZ세대에게 화제를 일으키고 있어 타건샵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타건샵 인기에 힘입어 전자랜드는 세모키를 전국 주요 매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현재 전국 14곳의 전자랜드DSC 매장에 세모키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 달엔 2개 지점에 세모키 매장이 추가로 문을 연다.
용산 아이파크몰도 지난 2월 국내 백화점과 쇼핑몰 최초로 키보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국내외 키보드 업체 20여곳과 커스텀 키보드와 기계식키보드 판매를 진행하면서 덕후들을 불러모았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MZ들은 주관적인 만족감을 중요시 여긴다"며 "키보드 시장은 독점 시장이 아니라서 차별화 요소가 중요해 더욱 세분화된 소비자 취향을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SNS와 입소문 등으로 기계식 키보드가 2030 사이에서 확산할 가능성도 있어 마니아층을 넘어 대중화될 여지도 보인다"고 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