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가 12일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낮추면 실물경기 회복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가계 부채 증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앞으로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어 향후 한은의 통화정책이 주목된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창립 75주년 기념사에서 “급하다고 경기 부양책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면 사후적으로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은 0.8%로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를 제외하면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경기 부양 정책이 시급해졌다고 보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성장 잠재력의 지속적인 하락을 막고 경기 변동에 강건한 경제 구조를 구축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며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 투자를 용인해온 과거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국과의 금리 인하 속도 차이가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도 거론했다. 그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중반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따라 내외 금리차가 더 커질 수 있다”며 “무역 협상 결과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커서 외환시장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6원30전 내린 1358원70전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이 총재는 “앞으로의 금리 정책은 인하 기조를 유지하되 구체적인 인하 폭과 시점은 향후 거시경제와 금융지표 흐름을 살펴보며 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는 구조개혁에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이 총재는 그동안 한은이 공개한 구조개혁 개혁 보고서를 하나하나 거론하며 “새로 출범한 정부가 구조개혁 과제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리더십을 발휘해 당면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화제로 떠오른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해선 “원화 표시 스테이블 코인은 핀테크산업 혁신에 기여하면서도 법정화폐 대체 기능이 있다”며 “안정성을 갖추는 동시에 외환시장 규제를 우회하지 않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내 업체가 구축한 ‘소버린(Sovereign·주권)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한은에 특화된 AI를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