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둘래" 나가더니 다음날 출근…쫓아냈더니 "5천만원 내놔"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18 hours ago 9

상사와 갈등 빚다 원장 찾아간 물리치료사
원장이 "상사 따르라" 지시하자 "그만둘래요"
짐싸서 나가더니 고용부에 괴롭힘 신고도
저녁되자 "감정적이었다, 출근하겠다" 문자
이튿날 출근 거부당하자 "부당해고" 주장
법원, 1심 뒤집고 "우발적 사직...확정 의사 아냐" 부당해고 판단
전문가들 "구두 사직에 엄격한 법원 입장 확인"

"그만둘래" 나가더니 다음날 출근...쫓아냈더니 "5천만원 내놔"[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업주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짐까지 챙겨 나간 직원이 저녁에 일방적으로 사과 문자를 보내고 이튿날 출근했다면 사직한 게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따라서 해당 직원의 출근을 막은 것은 '부당해고'라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사직 표시가 우발적이라면 사업주가 승낙했어도 사직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본 판결"이라며 "구두 사직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기준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는 병원장 B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심을 뒤집고 근로자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만둘게요" 짐 싸 나가더니...저녁에 "감정적이었다" 사과

2019년 해당 병원에서 물리치료 업무를 담당해온 A는 2022년 4월 물리치료실장이 외래지원 업무를 지시하자 이를 거부했다. 갈등을 빚던 끝에 실장이 시말서를 쓰라고 지시하자 A는 원장을 찾아가 "부당한 요구"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B원장이 상급자 명령을 따르라고 지시하자 A는 "지금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곧바로 병원장은 "그러라"고 답변했고 다른 직원에게 A로부터 사직서를 받으라 지시했다. A는 곧바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물건을 모두 챙긴 후 다른 직원들에게 "그만두고 나간다"라며 병원을 떠났다. 이후 병원에서 주는 사직서 양식을 챙겼지만 제출하지는 않았다. 이후 고용노동청여수지청에 원장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 진정서까지 제출했다.

막상 귀가한 A는 생각이 바뀌었다. 늦은 저녁 B원장에게 문자메시지로 "오늘 제가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 같아 죄송하다. 내일 출근하겠다. 내일 다시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보냈다. 하지만 원장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이후 A가 출근했지만 병원 측은 A의 노무 수령을 거부하고 근로관계 종료를 통보했다. 이에 화가 난 A는 고용노동청에 "퇴사를 통보 받았다"며 진정서를 냈다.

3개월 후인 7월 A는 전남지방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고 해고기간에 정상 근로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지노위는 기각했지만 중앙노동위가 부당해고로 보고 구제명령을 내리자 B원장이 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낸 것.

근로기준법과 민법에 따르면 사용자가 근로자로부터 사직서(사직 의사)를 받고 이를 수리하면 근로계약관계는 '합의해지'된다. 사업주의 일방적인 해고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다만 근로자의 사직 '청약'을 사용자가 '승낙'하기 전이라면 근로자가 사직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다.

○법원 "우발적으로 한 말...사과 문자로 사직 철회"

결국 사건의 쟁점은 "그만두겠다"는 A의 발언(사직 청약)과 B원장의 "그러자"는 발언(사직 승낙)으로 사직이 최종 성립했느냐의 문제가 됐다. 사직이 성립했다면 A는 철회할 수 없다.

1심 법원은 "A가 B원장에게 확정적으로 사직 의사표시를 했고, B 원장이 이를 승낙하면서 근로계약 관계는 합의해지로 종료됐다"며 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B원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은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구두에 의한 확정적 사직의사표시와 승낙 사실에 대한 인정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그만두겠다는 A의 발언은 확정적인 사직 의사 표시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증거로 "갈등을 빚던 실장이 시말서를 요구하자 그 과정에서 '그만두겠다'고 발언한 것"이라며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우발적으로 나온 발언으로 이해하는게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2년 반이 넘게 근무했고 사직할 동기도 없는데 '그만두겠다'는 발언을 확정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고용노동청에 A가 낸 진정 사유도 괴롭힘이지 부당해고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A가 저녁에 보낸 문자메시지로 사직 의사도 철회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B원장 측은 "이미 확정적으로 사직 표시를 했고 원장이 '그러자'고 승낙하면서 사직이 성립돼 철회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일축했다.

재판부는 "B가 '그러라'고 한 대답도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보다는 순간적 대화 중에 이뤄진 우발적인 발언"이라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사직 의사가 합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A의 문자로 사직이 철회됐는데, 병원이 A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것이라며 A의 손을 들어줬다. B원장은 법원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직장에서 사업주에게 행한 의사 표시고 이를 사업주가 승낙했음에도 정황증거를 근거로 '우발적'이었다고 보고 사직이 성립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라며 "구두로 행한 사직 의사 표시를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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