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이틀 앞둔 12일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자진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 7일 거취를 당(국민의힘)에 일임하겠다고 발표한 담화와 비교해 완전히 결이 달라졌다. 국민의힘은 더 이상 탄핵안 통과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해 강공 모드로 돌아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담화라는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요구한 임기 단축이나 하야 등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약 30분 동안 강한 어조로 담화를 이어갔다. 야당의 탄핵 시도를 ‘광란의 칼춤’으로 표현하고, 국회를 향해서는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라고 비난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3일 비상계엄 선포는 내란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계엄과 관련해 “그 목적은 국민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고, 대선 결과를 승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간첩법 개정에 반대하고, 검찰 및 경찰의 특별활동비를 내년도 예산에서 대폭 삭감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관련해서는 “유죄 선고가 임박하자 대통령 탄핵을 통해 이를 회피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려는 것”이라며 “자신의 범죄를 덮고 국정을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야당은 저를 중범죄자로 몰면서 당장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며 “망국적 국헌 문란 세력(민주당)이 이 나라를 지배하면 위헌적 법률, 셀프 면죄부 법률, 경제 폭망 법률이 국회를 무차별 통과해 이 나라를 완전히 부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은 최근 국민의힘 내 이탈표가 나오는 상황을 감안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7일 탄핵안 표결 당시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3명(투표 참석 기준)의 이탈표가 나왔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중 8명이 찬성하면 탄핵안은 통과되는데, 최근 탄핵안에 찬성하겠다는 인원이 늘었다.
여권 관계자는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윤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하든 결국 탄핵이 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윤 대통령은 ‘국회가 탄핵안을 처리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어 여당과의 타협을 포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회 관련 문제를 언급한 것도 지지세를 모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언한 이후에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 중 일부는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그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하반기 선관위에 대한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어서 국가정보원이 점검한 결과 상황은 심각했다”며 “방화벽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부정선거와 관련된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대통령실 참모와 여권 내부에서도 윤 대통령 담화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가를 위기에 빠지게 한 데 사과하기보다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담화 말미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계엄으로 놀라고 불안했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만 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