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윤정]장관 없는 경제장관회의, 조타수 없는 한국 경제

3 weeks ago 8

장윤정 경제부 차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8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는 한국 경제 사령탑의 공백을 여실히 드러낸 현장이다. 이날 행사는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퇴로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이 대행으로 주재한 첫 회의였다. 1분기 성장률이 ―0.2%로 추락한 가운데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위한 속도전이 필요한 중요한 회의였지만 분위기는 그에 걸맞은 위기감과 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 12개 부처 가운데 장관급이 참석한 곳은 단 2곳에 불과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출장 일정 등으로 불가피하게 장관이 참석하기 어려웠던 부처를 빼고 특별한 이유 없이 장관이 ‘결석’한 곳도 적지 않았다. 기재부의 한 관료는 “기재부 차관이 회의를 주재하는 어색한 상황을 피하려 장관이 참석하지 않은 부처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이 위계를 따질 때인가. ‘장관 없는 경제관계장관회의’는 부처 간 경제 현안을 조율하는 각종 정부 회의체가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위기 신호다.

후진적인 정치가 만들어 낸 초유의 ‘대대대행’ 체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폭탄에 맞대응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경제 외교마저 무력화했다. 최 전 부총리가 사퇴하면서 이탈리아 밀라노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예정됐던 한일 재무장관 회담은 취소됐다. 홀로 회의 참석을 위해 밀라노를 방문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바깥에서 볼 때는 선진국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해명해야 해서 곤혹스러운 한 주였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는 정치적으로 이래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바깥에서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대외 신인도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고 했다.

리더십이 공백 상태여도 정부 시스템은 정상 작동해야 한다. 1분기에 이어 관세 전쟁의 영향이 본격화할 2분기에도 역성장이 우려된다. 여기에다 아시아 외환시장도 제2의 ‘플라자합의’ 가능성으로 출렁이고 있다. 경제 살리기의 마중물인 추경을 신속하게 집행하고 외환시장과 국가신용도 관리에도 바쁠 판에 공무원들은 탄핵이나 선거 핑계를 대며 납작 엎드려 있다. 다음 정부에서 어느 부처가 사라지고 어떤 부처는 살아남는다거나 다음 장관은 누구이고 다음 차관은 누구라며 제 살길 찾기에 급급하다. 이러니 식품업체들이 정부 공백기를 틈타 눈치 보지 않고 가격 인상 러시에 동참하는 것 아닌가.

최근 일본 도쿄의 ‘도쿄 포트시티 다케시바’ 빌딩을 방문했다. 소프트뱅크 본사 등이 입주한 이 건물은 도쿄도가 주도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이다. 빌딩에는 1000여 개의 센서와 인공지능(AI) 카메라가 설치돼 실시간으로 층별 인원, 혼잡도 등을 감지한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로 요일별, 날씨별 이동 데이터를 분석해 입주한 식당, 커피숍 등에 제공하고 컨설팅도 해준다. 소프트뱅크는 미국의 오픈AI와 손잡고 오사카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도 건설할 계획이다. 한국이 리더십 공백 사태로 멈춰 있는 사이에도 세계 각국은 관세 전쟁을 넘어 AI 등 첨단기술 혁신 속도전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조타수가 없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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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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