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은택]뜯기고 맞고 결국 죽고… 일그러진 코리안 드림

3 weeks ago 6

이은택 사회부 차장

이은택 사회부 차장
“글뤼크 아우프(Glck auf)”

독일어로 “살아서 만나자”, “무사히 돌아오라”라는 말이다. 1960∼1970년대 서독 땅에 도착한 우리 파독 광부들은 막장으로 들어가기 전 동료의 무사를 기원하며 인사를 나눴다. 1963년에서 1977년 사이 파견된 광부는 총 7936명이었다. 타국에서 현지인이 기피하는 밑바닥 일터를 견뎌내는 것, 가족을 향한 그리움, 문화적 차이 등 그들이 마주한 장벽은 녹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시 파독 광부가 있었던 환경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2008년 낸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광부들은 한국, 독일 양국 협정에 따라 임금, 근로 조건, 노동 보호에서 독일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노동조합과 의료보험 가입이 보장됐고 작업량, 출결근 등 성과에 비례한 임금을 받았다. 기본적인 근로자의 권리, 현지인과 동등한 복지 혜택에 광부 상당수는 그곳에 정착해 가족을 이뤘다. 일은 고됐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국민을 해외로 보내던 나라가 60여 년 만에 이제 다른 나라 국민을 근로자로 받고 있다. 경제 발전 덕분에 입장이 변했다. 그런데 입장이 바뀌는 동안 태도도 바뀐 걸까.

올해 2월 전남의 한 돼지농장에서 네팔 청년 근로자가 죽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농장주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뺨, 머리를 상습적으로 때렸다. 한 네팔인은 맞아서 넘어지다 의식을 잃었다. 밤새 화장실에 가두기도 했다. 문제가 커지면 “다른 곳에서 일하게 해준다”며 회유했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합의서에 서명을 받았다. 폭행과 가혹 행위의 증거를 없앴다. 그러면서 최저임금보다 못한 임금을 줬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우리의 폭력, 가혹 행위, 차별, 임금 체불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밭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근로자가 한국인 관리자에게 장갑을 좀 달라고 했다가 “죽여버린다”는 욕을 듣고 두들겨 맞는 영상이 유튜브에 퍼졌다.

일부 고용주들의 차별과 멸시는 집요하다.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욕을 하기 위해 스마트폰 번역 애플리케이션(앱)까지 동원한다. ‘너는 멍청하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앱을 깔아 한국어를 입력하고 그 나라 말로 번역해 눈앞에 들이대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한다. 그 순간 외국인들이 눈앞에 마주하는 것은 모멸감을 넘어선 무력감이다. 이 원망스러운 나라에 사무치는 한(恨)이다. 일부 악덕 고용주의 문제라고, 대부분은 ‘동경하는 케이팝의 나라’에서 좋은 환경에 일한다고 믿고 싶지만 통계 수치는 냉정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 617명 중 외국인이 80명이었다. 12.9%다. 전체 근로자 중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3.5%에 불과한데 사망률은 한국인의 4배에 가깝다. 이 사망률은 3년째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 혐오, 착취가 사망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강력해 보인다. 이런 일을 겪은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 정착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한국의 일원이 될 리 만무하다.

60여 년 전 우리가 올챙이였을 때 개구리는 이러지 않았다. 우리는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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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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