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또다시 시민의 발이 묶일 위기에 처했다. 8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전국자동차노조연맹은 27일까지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을 경우 28일 첫차부터 서울을 비롯한 전국 17개 시도 버스 동시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현실화되면 서울 시내버스는 물론이고 고속·전세·마을버스 등 전국 4만 대 규모 버스들이 동시에 멈춰 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 버스 노조와 사측은 상여금과 통상임금 적용 범위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노조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임금 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서울의 교섭 결과가 타 지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노조는 연맹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이번 협상의 사측은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지만, 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지는 건 사실상 서울시다. 버스 운송에서 발생한 적자를 시가 예산으로 보전하는 준공영제 구조 때문이다. 서울시가 준공영제에 투입하는 예산은 매년 5000억 원 안팎. 서울시는 올해 노조 측 요구를 모두 수용할 경우 1년에 투입되는 예산이 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서울시민 1인당 부담 금액은 연간 3만 원이 늘어 총 8만8000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매년 수천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지만, 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줄일 방도는 없다. 노조법상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된 지하철과 달리, 버스는 ‘필수 인력 규정’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파업 당시 일부 시민들은 전광판 속 ‘출발 대기’가 전산 오류인 줄 알고 마냥 기다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시는 “버스는 인력 규정도 없고, 면허를 소지한 대체 인력 확보도 쉽지 않아 입법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며 대책 마련을 예고했다.
하지만 정작 지난해 10월 발표된 준공영제 혁신 방안에는 이러한 내용이 빠져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파업 시 필수 인력 규정은 방침으로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 등에 건의했지만, 시내버스는 민영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아 (제도 개정은)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다”며 “현재로서는 버스 노조가 전면 파업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의무 운행률을 유지할 수단이 없다”고 토로했다.
필수공익사업 지정을 섣불리 확대할 경우 노동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된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인한 버스 회사의 재정난 해결과 고령층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자체가 시내·마을버스에 투입하는 예산은 갈수록 늘고 있다. 수억 원의 혈세가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임금 협상 때마다 시민의 발이 볼모가 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자체와 노사 양측은 시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제도와 대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이소정 사회부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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