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 방중 스페인 총리와 회담
"부당 억압 두려워하지 말자"
산체스, 관세대응 협력 화답
7월 中서 EU정상회담 추진
시진핑, 직접 지도자 초청
전기차 관세 협상도 재개
◆ 관세전쟁 ◆
미국발 글로벌 '관세 전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유럽연합(EU)이 빠르게 밀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상을 뛰어넘는 무차별 관세 공격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발 공급과잉 등 주요 국제 현안을 두고 이견을 보여 온 중국과 EU가 관계를 재정립하고 공동 전선을 구축하려는 분위기다.
1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관세 전쟁에서 승자는 없고 세계와 대립하면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이라며 "어떠한 부당한 억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고한 신념과 인내심을 갖고 우리의 일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이 공개적으로 관세 전쟁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중국은 항상 EU를 다극 세계의 중요한 한 축으로 보고 있다"며 "중국과 EU는 파트너 관계를 고수하고 개방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양측은 국제적 책임을 이행하고 국제무역 환경을 공동으로 보호하며 일방적 괴롬힘을 함께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힘을 모아 대응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에 산체스 총리는 "스페인은 항상 EU와 중국 간 안정적인 관계 발전을 지지해 왔다"며 "EU는 다자주의를 옹호하고, 일방적 관세 부과에 반대한다"고 화답했다. 앞서 그는 미국의 관세 인상에 대해 "일방적 공격이자 19세기 보호주의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오는 7월에는 중국과 EU 간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이와 관련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이번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과 EU의 정상회담이 2년 연속 베이징에서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SCMP는 "원칙대로면 올해는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려야 하지만, 시 주석이 브뤼셀 방문에 소극적이어서 EU 측이 방중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구체적인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실상 시 주석이 EU 지도자들을 베이징으로 초청했다는 얘기다.
양측 간 관계 개선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중 강경파로 분류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통화에서 중국과 EU가 서로에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라면서 다자간 무역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 뜻을 같이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올 하반기 방중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EU 집행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마로시 셰프초비치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이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장관)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관세 폐기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관세 부과 대신 수출 시 최저 가격을 설정하는 방향으로 합의점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지난 8일 셰프초비치 집행위원과 왕 부장 간 영상회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최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왕 부장이 EU 측과 회담하면서 전기차 관련 협상을 바로 시작하고 양측 간 자동차 산업에 대한 투자 협력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독일의 입장이 상당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BMW 등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은 중국의 보복 조치로 중국 사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하며 EU의 관세 조치에 반대해 왔다. 왕 부장은 지난달 방중한 올리버 칩제 BMW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BMW가 중국과 EU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는 데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EU 집행위는 2023년 10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1년간의 조사 끝에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저가 전기차가 유럽 시장을 교란한다고 판단한 뒤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로써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된 총 관세율은 기존 10%에서 최대 45.8%까지 인상됐다. 제조사별로 보면 BYD 27%, 지리자동차 28.8%, SAIC 45.3% 등이다. 이후 EU와 중국 정부가 추가 협상을 벌였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베이징 송광섭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