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진관동 한옥마을 근린숲공원에서 시작하는 북한산둘레길 9구간(진관생태다리∼방패교육대) 초입을 1km 정도 걷다 보면 ‘도림원’이라는 꽤 멋들어지게 지은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이 밥집은 당연히 북한산둘레길을 찾는 산보객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밥집에 관한 유서 깊은 풍설 하나가 있다. 역이나 터미널 앞, 관광지 등 주로 외지인을 상대로 하는 밥집의 음식 맛은 기대할 게 못 된다는 것이다. 산수가 좋은 곳마다 어김없이 조성된 둘레길에 인접해 있는 식당들 역시 이 풍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밥집 주인으로서는 억울할 법도 한데, 지나가는 과객이 어쩌다 한번 들러 먹는 음식을 굳이 정성 들여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이 풍설의 확인되지 않은 근거다.
그런데 도림원은 이 같은 오해를 단박에 뒤집는다. 주거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숲속에서 둘레길을 찾는 관광객들을 식객으로 삼으면서, 여느 유서 깊은 한식당 못지않은 음식 맛을 선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일행이 주문한 메뉴는 숯불에 구워 먹는 돼지갈비. 날씨가 워낙 좋아 노천 테이블을 택했다. 1인분 300g에 2만 원이라는 가격이 전혀 부담 없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함께 차려져 나온 음식을 보는 순간 그런 얄팍한 생각은 싹 사라졌다. 잘 익은 열무김치와 겉절이 배추김치, 꽈리고추멸치볶음, 도라지무침, 깻잎장아찌, 취나물과 궁채나물 등 웬만한 한정식집 백반 차림 못지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처럼 고급스러운 반찬이 무한정 제공된다는 점이다. 반찬 진열대를 열어 두고 손님이 직접 가져다 먹을 수 있게 배려했다.노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부들부들하면서도 깊고 향기로운 식감을 안겨준 돼지갈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행이 진심으로 감동한 것은 앞서 언급한 찬들의 깊은 맛이었다. 화학조미료 맛이 전혀 나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감칠맛을 살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간을 맞출 수 있었을까. 젓가락이 쉼 없이 움직였다. 거기에 청국장과 찰밥의 미친 조화라니.
도림원 사장 부부인 김정길, 송다겸 씨는 숲속 식당을 함께 일군다. 일행이 식사하는 동안에도 김 씨는 쉴 새 없이 식당 안팎을 오가며 정원에 심은 나무를 다듬고 식당 구조물을 손봤다. 김 씨의 풍모에서 예인의 실루엣이 어른거려 물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색소폰을 불던 연주자로, 숲속에 음악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려고 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손맛 좋은 아내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아마도 도림원은 그 부부가 찾아낸 길이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포는 길 위에서 생명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노포의 ‘노’를 오래됐다는 뜻의 ‘老’가 아닌 길을 의미하는 ‘路’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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