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새벽 2시 50분경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12·3 비상계엄 선포 사건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17일까지만 하더라도 영장심질심사에는 출석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8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변호인단을 접견한 후 직접 법정에 출석해 자신이 선포한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18일 오후 1시 26분경 윤 대통령을 태운 법무부 교정본부의 호송 차량이 대통령경호처의 경호를 받으며 서울서부지법으로 출발했다. 윤 대통령은 오후 1시 54분경 서울서부지법에 도착했고, 오후 2시부터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됐다.
● “전형적 확신범” VS “대통령 고유 통치행위”공수처는 이날 주임검사인 차정현 수사4부장을 비롯해 수사팀 검사 6명이 참석했고, 윤 대통령 측에선 대통령 본인과 8명의 변호사가 출석해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공수처는 프리젠테이션(PPT)을 통해 비상계엄의 발동 요건인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징후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혼란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국무위원들 다수가 반대했음에도 윤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비상게엄을 선포했다면서 내란 혐의가 소명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증거 인멸, 도주 우려, 재범 위험성이 농후하다며 구속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올 1월 1일 자필 서명 편지를 통해 극렬 지지자들의 결집을 호소해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선동한 점, 최근 텔레그램을 탈퇴했다는 상황 등을 증거인멸 우려의 이유로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2차계엄을 실행하려 했다면서 ‘전형적인 확신범’으로 재범위험성이 크다는 점도 역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측도 준비해 간 PPT를 제시하며 체포 및 수사의 불법성 등을 주장했다. 윤 대통령 측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관저에 머물면서 주거가 뚜렷하고, 증거를 인멸할 정황도 없다면서 공수처의 주장을 반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수처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내란 혐의 수사권을 인정할 수 없고, 공수처의 1심 관할법원이 서울중앙지법이라는 점에서 서울서부지법으로의 영장 청구가 전속 관할 위반이란 점 등을 주장했다.● 4시간 50분 심사…45분간 尹 직접 발언
양측이 70여분씩 각자의 주장을 펼친 뒤 피의자인 윤 대통령이 오후 4시 35분경부터 40분간 직접 재판부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국내 정치 환경 등이 비상사태에 준한 상황이었다면서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고유한 통치행위이자, 헌법적 결단이란 점 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행사로 형사상 내란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심사가 종료되기 전 5분 가량도 발언권을 얻어 입장을 밝히는 등 이날 심사장에 45분 간 직접 재판부를 향해 발언했다.
영장심사는 4시간 50분 만인 저녁 6시 50분경 종료됐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타고 온 법무부 호송차량에 탑승해 다시 서울구치로소 돌아가 결과를 기다렸다. 이후 차 부장판사는 약 8시간의 숙고 끝에 19일 오전 2시 50분경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윤 대통령 측은 19일 입장문을 통해 “발부 사유는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음’ 단 한 줄이다. 찾고 찾아도 사유를 찾을 길이 없자, 그나마 핑계가 되는 사유를 내놓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 체포영장, 적부심 기각 이어 구속영장까지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에 이어 체포적부심이 기각되고, 구속영장까지 법원이 발부하면서 공수처의 수사권 논란이나 전속관할 법원 논쟁이 사실상 해소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서 발부받은 체포영장은 불법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도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체포적부심을 기각했고, 체포영장과 다른 판사가 심사한 구속영장까지 발부되는 등 공수처의 수사와 영장 청구가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판단이 연달아 나왔다.
특히 법원이 윤 대통령의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려면 증거인멸 우려 외에도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혐의 소명’은 본 재판에서의 유무죄 판단 기준인 ‘혐의 입증’보다는 문턱이 낮다는 점에서 당장 유무죄를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윤 대통령 측은 재판에서도 각종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며 “공수처와 검찰이 잘 협조해서 보강수사를 빈틈없이 하고 공소 유지를 잘 해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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