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시장이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일반 청약에는 수조원의 증거금이 몰리고 수요예측 경쟁률은 수천 대 일을 기록하며 ‘불장’을 방불케 하지만 정작 시장의 체력을 지탱할 ‘텐트폴’(핵심 지지대) 기업은 자취를 감췄다.
◇ 올해 상장 예심 청구 모두 코스닥
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한국거래소에 IPO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스팩 제외)은 총 26곳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예심 청구는 단 한 건도 없다. 최근 5년간 1~4월 예심 청구는 2022년 39곳, 2023년 42곳, 2024년 43곳, 2025년 28곳을 기록했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 예심 청구 기업은 평균 3.5곳이었다. 신규 상장 기업 역시 11곳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27곳)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올해 신규 상장한 기업이 줄줄이 공모 흥행에 성공하며 상장 첫날 주가가 급등한 것과 대조적인 모양새다. 올해 IPO 시장은 시가총액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코스닥 중소형주가 주도하고 있다.
IPO 대어는 단순히 기업가치가 조 단위라는 상징성을 넘어 국내 자본시장의 질적 성장을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상대적으로 국내 증시에 관심이 낮은 해외 기관투자가를 끌어들이는 ‘앵커’ 역할을 하며 시장의 질적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대형 증권사 IPO 본부의 풍경도 바뀌었다. 통상 IPO 대어를 위주로 전년 말과 연초에 쏟아지던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가 뚝 끊겼다. 증권사 관계자는 “개별 종목의 흥행 성적은 화려하지만 정작 국내외 기관투자가에 대규모 자금을 받아 시장의 전체 파이를 키워줄 대어는 없는 상황”이라며 “현장에서는 시장 전체의 활력은 예년만 못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유니콘이 빈자리 메울까
IPO 대어가 실종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모자회사 동시 상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엄격한 잣대가 대기업 계열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의 권익 보호를 우선시하는 심사 기조가 강화된 상황에서 재무적투자자(FI)의 투자금 회수를 위한 구주 매출이나 지배구조 개편을 수반하는 상장 건이 줄줄이 보류되거나 관망세로 돌아섰다.
한국거래소가 기술특례 상장 시 수익성을 깐깐하게 검증하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기술력만으로 상장이 가능한 제도지만 최근에는 구체적인 흑자 전환 시점과 매출 실현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에 준비가 덜된 후보가 상장 시기를 늦추는 분위기다. 최근 국내 증시가 호조세를 보이며 증시 재평가 기대가 형성되자 IPO를 추진하던 기업이 섣부른 상장보다 적정 몸값을 받기 위해 눈치 보기식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의 시선은 올해 IPO 대어 후보로 꼽히는 무신사, 리벨리온, 업스테이지, 구다이글로벌 등 대형 스타트업의 등판 시기에 쏠리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수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다. 중복상장 이슈에서 자유로운 데다 혁신 기술 또는 글로벌 확장성을 갖춘 곳으로 평가된다. 투자은행(IB)업계 전문가는 “IPO 대어들이 상장 완주는 물론 어떤 성적표를 받느냐에 따라 내년 초까지의 IPO 시장 분위기가 갈릴 것”이라며 “이들 기업조차 상장 일정을 미룬다면 점차 시장의 활기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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