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수빈 기자] 심화하는 공급망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ESG 경영을 정착시키고 ‘ESG 리스크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윤리경영학회는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경영관에서 ‘다원적 가치시대 윤리경영’을 주제로 2025년 춘계학술대회를 열었다. 허대식 연세대 경영대학 학장은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ESG에 대한 인식이 후퇴하고 있고 과도한 규제나 이념적 개입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가 윤리 경영의 본질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사회 전반에 깊이 있게 뿌리내리도록 해야 하는 시급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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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수빈 기자]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경영관에서 열린 2025년 한국윤리경영학회 춘계 학술대회에서 윤용희 변호사(법무법인 율촌)가 ‘공급망 리스크 관리 관련 글로벌 법제 동향과 실무상 쟁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기업, 사회적·윤리적 가치 실현에 기여해야”
‘다양성 존중과 윤리경영’을 주제로 진행된 첫 번째 특별 세션에서는 강미영 숙명여대 교수가 신체적 소수자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에 대해 발표했다.
CSR은 기업이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적 주체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윤리적 가치 실현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아치 B. 캐롤 교수는 CSR을 경제적, 법률적, 윤리적, 자선적 책임의 4단계로 정의했다. 강 교수는 이 때문에 기업의 ‘경제적 책임’, 즉 이윤의 극대화가 기업의 최우선 목표인 것으로 여겨져 포용적인 기업문화를 형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신체적 소수자를 채용하고 지원하는 기업의 책임에 집중하며 기업이 CSR에 대한 시혜적 요소만을 과하게 강조한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강 교수는 “모든 신체적 소수자에게 가져야 하는 정서적 반응을 먼저 규정해버리는 것이다”며 “그들은 단지 신체가 불편할 뿐이지 인간의 입체적 사유를 갖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힘줘 말했다. 더불어 그는 현행법과 규제, 감시로는 바람직한 사회와 CSR로 갈 수 없다며 CSR의 질적 완성도를 이루는 기업에 대한 보상과 인센티브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탈 탄소화 최대 이슈는 EU 탄소국경조정제”
허규만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파트너는 챙겨봐야 할 ESG 주요 이슈를 짚었다. 허 파트너가 꼽은 키워드는 △탈 탄소화 및 에너지 전환 △공급망 복원력 및 순환경제 △생물다양성 및 자연자본 △인권 보호 및 향상 등이다.
이중 가장 당면한 이슈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유럽의 배출권거래제도(EU ETS)의 보완적 측면으로 시작한 CBAM은 탄소 누출이 큰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력, 수소 등 총 6개 부문에 대해 생산할 때마다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그에 맞는 인증서를 사야 한다. 2023년 5월 관련 실행 지침을 확정하고 10월부터 전환기간이 시작했으며 2026년 1월부터 시행한다. 완벽한 시행은 2034년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허 파트너는 “미국에서도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며 환경과 지구온난화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이 이런 걸 지금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신일항 가천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복잡한 외부환경과 ESG 경영’을 주제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윤용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공급망 리스크 관리 관련 글로벌 법제 동향과 실무상 쟁점에 대해 발표했다. 윤 변호사는 “기업이 기존 ‘준법 리스크’ 관점에서 리스크를 관리했다면 이제는 ‘ESG 리스크 관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국내 법령에 근거한 리스크만 체크하면 됐지만 오늘날에는 국제규범이나 외국 법령에 더불어 국제사회의 기타 연성규범까지 모두 준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공급망 리스크 관리 체계’ 고도화·의무화해야
이 중에서도 핵심은 ‘공급망 리스크 관리 체계’가 고도화·의무화됐다는 점이다. 공급체인 과정 중 일부에서 인신매매, 아동 노동 착취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거나 그러한 사업장에 금전적, 기술적 지원을 해주었음을 이유로 한 여러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대상기업 자체와 자회사의 활동뿐 아니라 제품의 생산과 서비스, 유통 등 전 공급망 과정의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윤 변호사는 더불어 “ESG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을 때, 담당 이사뿐 아니라 다른 이사들까지도 감시 의무 위반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소송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재홍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기업은 현재 공급망 지도를 그리는 ‘공급망 매핑’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기업이 공급망 정보를 확보하려고 할 때 이는 협력업체로선 일종의 ‘영업비밀’이기도 해서 정보 자체를 안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사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공급망을 다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 공급망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과 공급망을 재편하는 것 중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며 “유럽에서 공급망 규제를 밀어붙였지만 최근 분위기가 (완화되는 등) 조금씩 바뀌고 있다. 기업으로서도 지켜보는 상황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