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용자한테 이자 더받아 저신용자 돕자”는 이재명 정부의 착각 [손일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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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와 국내 주요 금융기관들이 무디스와의 접촉을 통해 한국 경제의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간 금리 불균형 해소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고신용자의 이자 부담을 늘리고 저신용자의 금리를 낮추자는 방향으로, 이는 신용사회의 기본 원칙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시장 내 신용의 원칙이 무시될 경우 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정부는 정책금융 확대와 신용 회복 제도 강화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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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정한 금리 무시하면
신용사회 기반 통째로 흔들려
약자위한 인위적인 착한금리는
복지의 탈쓴 위험한 금융실험
시장 왜곡하고 서민만 고통받아
‘착한금리’ 환상에서 벗어나야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청년담당관 임명장 수여식 및 제11차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매경DB]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청년담당관 임명장 수여식 및 제11차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매경DB]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국회예산정책처. 지난달 사흘간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무디스 연례협의단과 접촉한 국내 주요 기관들의 명단이다.

무디스뿐 아니라 S&P, 피치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국내 경제·금융기관들이 총출동한다. 국장, 과장 등 실무자들은 물론 장관까지 직접 발로 뛴다. 이번 무디스 방한 때에도 구윤철 기재부 장관이 이들을 만나 “정부 재정은 튼튼하고 한국경제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정부뿐 아니라 개인도 신용등급 관리에 진심이다. 대출이자는 물론 핸드폰 요금, 보험료 등을 연체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현금서비스, 카드론, 리볼빙 사용은 최대한 멀리한다. 외환위기, 신용카드 사태 등을 거치면서 신용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신용 관리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현대자본주의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 신용사회이기 때문이다.

신용은 경제와 사회의 기본적인 질서와 신뢰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신용이 존재하지 않으면 시장에 돈이 돌지 않고 경제가 마비된다. 특히 금리는 ‘신용의 가격’이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낮은 금리를,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높은 금리를 내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하지만 최근 이같은 신용사회의 기본질서가 통째로 위협받고 있다. 그 시발점은 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9일 국무회의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고신용자의 이자 부담을 늘려 저신용자의 대출 금리를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저신용·저소득자가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금융구조는 역설적”이라고 거들었다.

은행이 고신용자에게 낮은 금리를 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떼일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신용자는 연체와 부실 위험이 커 당연히 더 비싼 이자를 내야 한다. 보험사가 사고 확률이 높은 가입자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간단한 산수를 정부·여당은 거꾸로 뒤집었다. 위험이 낮은 사람에게 부담을 늘리고, 위험이 큰 사람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고신용자의 낮은 금리는 성실하게 빚을 갚고 약속을 지킨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그런데 이 보상을 빼앗아 저신용자에게 나눠주겠다는 건 역차별적 발상이다. 시장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우려도 크다.

결국 시장에서 신용 축적의 동기가 사라지고 자본은 위험이 낮은 곳으로 도망간다.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서민이다.

저신용자 고통을 줄이겠다면 정공법을 찾아야 한다.정부가 정책금융을 확대해 일정 부분 금리를 보조하거나, 보증을 제공해 은행이 대출을 내줄 유인을 주는 방식이 합리적이다. 또 신용 회복 제도를 강화해 재기 기회를 주고, 불법 사금융을 단속해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장가격인 금리를 억지로 ‘착하게’ 만드는 건 위험하다. 과거 법정 최고금리를 내렸지만 결과는 역설적이었다. 저신용자 대출은 오히려 줄었고, 결국 저신용자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렸다. ‘착한 금리’가 착한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 것이다.

포용적 금융, 따뜻한 금융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금융과 복지의 경계선을 명확히 그어야 한다. 금융은 따뜻한 마음으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원칙과 신뢰의 무대 위에서만 작동한다.

정부가 신용사회의 무게를 간과하고 금융을 복지의 관점에서만 접근한다면 시장은 왜곡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착한 금리’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신용사회의 근본을 지키는 냉정한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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