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배우의 24시간 관찰 카메라(미친 스케줄, 따라 하지 마세요)'라는 영상을 계기로 대치동 아이들의 일상이 어느 때보다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배우 한가인이 지난해 10월 유튜브 채널 '자유부인 한가인'에 올린 일상은 충격을 줬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15시간 동안 아이를 등교, 등원시키고 학부모 브런치 모임 후 아이를 픽업해 학원에 데려다주는 일상이 드라마 속 극성스러운 열혈맘의 일상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이를 패러디한 개그우먼 이수지의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자녀에 헌신적인 대치맘을 희화화하고 조롱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수지는 4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딸의 학원 루트를 따라 라이딩을 해주며 차 안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보냈다. 김밥 한 줄로 식사를 대신하는가 하면, 원어민 교사에게 '배변 훈련에 성공했다'는 전화를 받고 감격했다. 또 새롭게 등록할 과외 등록을 위해 선생님에게 상담받으러 가는 장면도 그려졌다. 자녀 일정을 여러 학원으로 빽빽하게 채워 관리하는 학부모를 풍자하는 장면도 나왔다. 김 씨는 휴대폰으로 영어학원, 줄넘기, 수학학원, 연기학원 등 제이미의 하루 스케줄을 확인했다. 심지어 아이의 배변 훈련을 위해 1년 과정 훈련코스에도 등록했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실제 대치동 아이들은 3세 영어유치원부터 19세 대입까지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해 내고 있다.
강영연 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지난 15일 공개된 KBS 1라디오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와 함께하는 '별책부록' 유튜브에 출연해 현장에서 발로 뛰며 취재한 상상초월 대치동 아이들의 일상과 사교육비 실태를 소개했다.
신간 '대치동 이야기(한국경제신문)' 공동 저자 강영연 기자는 "대치동에서는 3세부터 영어학원 유치부, 이른바 영어유치원에서 사교육 첫발을 뗀다"고 운을 뗐다.
◆ 교육기자가 직접 취재한 대치동 교육 현실
강 기자는 "영어유치원 한 달 학원비만 100만원대 후반이다. 여기에 교재비 피복비까지 하면 300만원에 달한다"면서 "영어유치원만 다니는 게 아니고 과외도 받고 학습지도 하지 않나. 취학 전에만 한 달 400~500만원이 드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초등학교 때 사교육비도 마찬가지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순간 단과학원 한 과목당 50~60만원, 교재비까지 하면 70~80만원인데 평일에 2곳, 주말에 3곳을 가야 한다"라면서 "이것만 단순히 계산해도 400만원인데 여기에 관리형 스터디카페가 한 달에 60만원부터 최대 100만원까지 든다. 고등학교 3년만 따져도 1억8000만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수라도 하게 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강 기자는 "재수 종합학원, 생활비, 월세가 추가로 더 들고 대치동 거주가 아닐 경우 기숙학원에 등록해야 하며 스터디카페나 관리형 독서실까지 하면 한 달에 600~700만원은 족히 든다"고 했다.
대치동 학원을 보내는 비용이나 유학을 위한 보딩스쿨에 다니나 비슷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제력이 된다면 유학을 보내기도 한다고.
3살부터 17년간 대입을 위해 뛰는데 그 과정에서 번아웃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강 기자는 "대치동에는 체력관리를 위한 한의원도 많지만 청소년 심리센터가 학원만큼 많다"면서 "스트레스 관리가 기본이다. 한 영유아는 3살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니다 6개월 만에 번아웃이 와서 색연필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이를 끊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대치동이라고 성공한 케이스만 있는 것 아니다. 이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라며 "아이들이 등교 거부하는 경우가 생기면 그제야 부모들이 심각성을 깨닫고 사교육 다이어트를 하다 극단적인 경우 대안학교로 옮겼다가 해외 유학으로 돌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3을 중등반이라 하지 않고 예비고입반으로 부르지 않나.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다"라며 "선행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해서 모르는 개념을 짚지 않고 늘 높은 반만 들으려 한다는 대치동 강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강 기자는 "대치동을 없앤다면 사교육이 없어질까. 이들과 공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질문에 답을 찾을 순 없어도 가까워지려는 발걸음을 해야 한다"면서 "대치동 사교육 열풍을 긍정적으로 볼 순 없지만 대치동이 없다고 사교육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제대로 알아야 고칠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 변화와 발전을 위해 대치동 가려는 학생뿐 아니라 정책 결정자들도 대치동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치동의 경쟁력은 바로 경쟁
27조 1,144억 원.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액으로 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영업이익을 넘어서는 규모다(2023년 기준). 의과대학 입학생 네 명 중 한 명은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출신으로 그 중 강남구 한 곳에서만 전체 의대 입학생의 20%가 배출됐다. 사실상 ‘대치동 교육’을 받은 아이들 판으로 변한 셈이다. 한국의 사교육 시장을 주무르는 대치동의 경쟁력은 ‘경쟁’에서 나온다.
대치동은 단순한 교육의 중심지가 아니다. 이곳은 수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인생의 방향을 설계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시험하는 한국 교육의 축소판이다. 월 수백만 원의 학원비, 어린아이부터 시작되는 입시 로드맵,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 그리고 한계를 넘어서야만 하는 학생들, 치열한 학원가의 경쟁. 이 모든 것이 대치동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는 극적인 드라마다.
종로학원, 대성학원 등이 양분하던 대입 시장은 시대인재라는 새로운 강자에 의해 재편됐다. 영어유치원, 초등학교 국어, 중학교 수학. 모든 분야의 1위 업체는 빠르게 따라오는 2, 3위 학원들과의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선생님 별로라던데?’라는 입소문에 그동안 쌓아온 경력이 무너질 수 있다. 일타강사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강의를 준비하고, 문제를 개발하는 이유다.
대치동 고등학생이 가장 신경 쓰는 과목은 수학이다. ‘닥수’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문과든 이과든 상관없이 수학이 대학 합격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대치동 학생들 중 수능 대비 수학 공부를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하는 학생은 없다. 빠르면 중학교 3학년에 고등학교 3학년 교과에 있는 수능 핵심 개념들까지 선행을 마친다. 늦어도 고등학교 1학년 2학기에는 끝낸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겨울방학부터 본격적인 문제 풀이를 시작한다.
◆ 대치동에서는 공인중개사가 학군 전문가?
“자녀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예산은 최대 10억 원 정도입니다. 대치동 전입을 고민하고 있는데, 어디가 좋을까요?”
10년 전 대치동에 입성, 고등학생 자녀를 키우며 공인중개사로 활동하는 이미경 대치학군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교육 컨설턴트가 된 기분까지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매물의 컨디션, 교통 편의성, 투자 전망, 병원이나 마트 등 생활 인프라에 더해 단지별 배정 학교, 학원가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학군지 공인중개사의 숙명”이라며 대치동의 교육열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한 단기 임대 플랫폼에 올라온 대치동 학원가 인근 월세 시세는 30만~270만 원으로 형성돼 있었다. 매물 정보에 ‘시대인재 근처’라고 강조한 한 원룸은 ‘1주에 34만 원, 풀옵션으로 공부 분위기 최적, 한 달 임대도 가능’이라고 홍보했다. 이외에도 ‘대치동 학원가 걸어서 3분 거리, 한티역 초역세권’ 등 문구를 걸어두고 세입자를 구하는 곳도 많았다. 대치동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가격과 상관없이 시대인재를 비롯한 주요 학원가가 인접해 있는 등 조건이 좋으면 바로 계약하는 부모도 많고, 학생을 혼자 보내기 두려워하는 부모들은 투룸을 계약하고 아이들과 함께 거주하기도 한다”고 했다.
학원가와 가까우면서 은마아파트보다 컨디션이 나은 단지로는 대치현대아파트, 대치삼성아파트, 대치효성아파트 등이 있다. 다만 가구 수가 수십 가구에 불과한 ‘미니’ 단지들이 상당수여서 매물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방 3개짜리 100제곱미터대를 알아보면 전세가가 13억 원 이상으로 확 뛴다.
다만 대치동 부모들이 아이가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만이 유일한 인생 항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일단 중등 시기까지는 학업에 몰두하도록 환경을 갖춰보지만, 아이가 국내 입시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이 서면 다른 진로를 찾을 수 있게 적극적으로 돕는다”며 “대치동에는 체대나 미대 등 예체능 계열 입시, 해외 유학 트랙을 준비하는 기관도 다양하게 있다. 이를 위한 정보를 큐레이팅해주고 입시의 길로 안내하는 컨설팅 조직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치동 이야기' 책은 대치동의 사교육 시장과 교육 생태계를 가감 없이 들여다보고, 그 이면에 감춰진 기회, 희망, 그리고 한계를 고민하게 해준다.
대치동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책을 통해 대치동 학부모들의 전략, 학생들의 고군분투, 학원가의 변화, 학군지 분석, 그리고 교육 격차의 현실 속에서 한국 교육의 미래를 다시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강 기자는 "'대치맘' 패러디가 화제인데 웃고 넘길 게 아니라 그 현상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생각할 거리가 있는지 다같이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