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제공
그릇을 닦던 손에 다시 대본이 쥐어졌다.
배우 최강희가 돌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얼굴은, 이제 다시 라디오와 TV 화면 속에서 웃고 있다. 하지만 그 사라졌던 시간, 그저 ‘쉬는 중’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는 실제로 은퇴를 고민했고, 연기를 그만두려 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즐겁지 않았고, 사랑받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졌다.
“이젠 그만해야 하나…?”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그는 김숙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김숙은 단호했다.
“은퇴하겠다는 말, 어디 가서 하지 마. 너 혼자만 알고 있어.”
● 최강희를 지킨 친구의 한마디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한 최강희는 당시를 고백했다. 연기자로서 즐기지 못했던 시간, 점점 커지는 부담, 그리고 결국 ‘은퇴’라는 단어까지 떠올리게 된 마음. 하지만 김숙은 그의 결심을 단칼에 막았다. 말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한마디가 최강희를 지켰다. 입을 닫고, 마음을 여는 시간이 시작됐다.
최강희는 그 뒤로 연예계 바깥의 삶을 택했다. 인천의 고깃집에서 설거지를 했고, 가사도우미로도 일했다. 연예인이 아닌,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아보는 시간. 평범한 노동 속에서 그는 다른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다.
● 설거지통 앞에서 마음을 씻다
최강희는 공백기 동안 인천의 고깃집에서 설거지를 했고, 가사도우미로 일하기도 했다. 연기를 멈추고 선택한 삶은 누구보다 평범하고 성실한 시간들이었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손을 쓰는 노동은 마음의 감각을 되살린다”고 말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육체노동이 오히려 마음을 다듬고 회복시키는 힘을 가진다는 뜻이다.
최강희에게도 그 시간은 결코 공허하거나 무의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릇을 닦고, 집안을 치우는 일상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가라앉고 다시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무대는 아니었지만, 그 무엇보다 진실된 삶의 수업이었을 것이다.
최강희는 다시 돌아와 우리 앞에 섰다. CBS 음악FM ‘최강희의 영화음악’ DJ로 마이크를 잡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을 시작했다. 여전히 익숙한 얼굴인데, 어딘지 모르게 더 단단해졌고, 더 밝아졌다.
쉰다고 해서 멈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공백 속에서 그는 더 단단해졌다. 그렇게 조용히 자신을 닦아낸 시간 끝에, 최강희는 예전보다 더 선명한 얼굴로 돌아왔다.
이제는 그 얼굴이 다시 빛날 무대를, 우리가 함께 지켜볼 차례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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