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속은 사기단 수법
외국계 투자기업이라 속이고
기부·봉사 모습 언론에 홍보해
피해자 신뢰 얻고 투자자 모집
가상자산 환전해 추적 어려워
경찰이 외국 기업의 한국지사로 위장해 투자자 수천 명에게서 수백억 원을 탈취한 조직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해당 조직은 피해자들에게 가상자산거래소 이용법을 교육하면서 피해자들이 직접 가상자산을 송금하도록 유도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경찰과 함께 사기 예방 캠페인을 펼치는 것처럼 꾸미거나 ‘봉사단체’로 위장하기도 했다.
4일 매일경제 취재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계는 지난달 15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A사를 압수수색하고 대표이사 정 모씨(55)의 계좌 추적에 나섰다.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정씨는 A사가 영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투자사의 한국지사라고 홍보하며 지난해부터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정씨는 피해자들에게 “미국의 한 농업 기업이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 중이라는 정보를 알고 있다”며 “위탁투자를 하면 고수익은 물론 원금을 100% 보장하겠다”고 주장했다.
A사는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2023년 하반기부터 국내에서 봉사활동을 활발히 벌이는 것처럼 가장했다. A사는 각종 지방자치단체와 복지기관에 수백만 원의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대규모 봉사활동을 주관했다. 이 모습을 담은 사진을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도록 해 대외적으로 ‘사회적기업’이라는 인상까지 심었다. 여기에 속은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에게 투자를 권유하는 일마저 발생했다.
이들은 피해자들과 수사당국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경찰 등 정부 명의를 도용했다. A사 공식 홈페이지에는 경찰서와 함께 ‘사기 예방 캠페인’ 현수막을 들고 찍은 사진이 게시됐다. “우리 봉사활동 하는 곳인데, 같이 사진 한 장 찍어주시죠”라는 말에 경찰도 깜빡 속았다. 정부로부터 각종 봉사 관련 상훈을 받았다는 홍보도 곁들였다.
올해 초까지 투자수익을 배분하며 투자자를 모집하던 A사는 지난 4월 5일부터 모든 투자금 출금을 정지시킨 뒤 잠적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A사는 40여 개 계좌로 탈취한 투자금 대부분을 가상자산 테더(USDT)로 전환해 미국 거래소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경찰의 수사망을 회피하고 있었다. USDT는 미국 달러와 가치가 일대일로 연동되도록 설계한 스테이블코인이다.
A사는 또 피해자들에게 가상자산거래소 이용 방법을 직접 가르쳐 피해자가 직접 A사의 가상자산 지갑으로 USDT를 보내도록 했다. 이번 사기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는 전국 최소 3000명에 달하며, 피해액은 수백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매일경제는 사실 확인을 위해 대표이사 정씨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