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 구상을 한데 모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이 상원에 이어 3일(현지시간) 하원까지 통과하며 의회 문턱을 넘었다. 대규모 감세와 복지 지출 축소를 담은 이 법안에 대해 적지 않은 공화당 의원이 반대나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법안이 통과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국 운영에 탄력이 붙게 됐다.
◇정국 구상에 ‘날개’
미 하원은 이날 찬성 218표, 반대 214표로 트럼프 감세안을 처리했다. 앞서 상원에선 찬성 51표 대 반대 50표로 법안이 통과됐다. 하원 통과 순간 의사당에선 ‘USA! USA!’를 외치는 목소리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미 언론에선 “트럼프의 큰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목표대로 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 오후 5시 백악관에서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다.
이번 법안 통과로 트럼프 대통령은 남은 3년 반 임기 동안 대선 때 공약한 핵심 국정과제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법안에는 2017년 트럼프 1기 정부에서 통과됐던 세금 감면·일자리창출법(TCJA)의 일몰을 영구히 없애는 내용이 담겼다 개인·법인 소득세를 낮추고, 팁과 초과근로 수당에 대한 면세도 포함됐다.
수입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메디케이드(저소득층 건강보험)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은 대폭 줄였다.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한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관철된 것이기도 하다. 신속한 법안 통과를 위한 ‘예산조정절차’에서 사회보장 혜택을 빼는 것은 규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공화당은 ‘사기 방지’라는 명목을 내세워 대통령의 주장을 관철시켰다.
특히 ‘보이지 않는 승리’는 부채한도 5조달러 상향이다. 미국 정부는 현재 36조1000억달러 규모 부채 한도를 꽉 채웠다. 이대로면 오는 8~10월 중에는 연방정부 셧다운(운영중단) 위기에 몰릴 수 있다. 하지만 부채 한도가 늘어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과 협상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민주당은 무력했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에게 관행적으로 주어지는 권한을 이용해 8시간44분간 연설을 하는 신기록(종전기록 8시간32분)을 성사시키며 표결을 잠시 늦춘 게 전부였다.
◇“중간선거 질 것” 경고도
임기 초반부의 기세가 다소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와중에 감세안 통과를 성공시키며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상징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종일관 ‘내 뜻대로 밀어붙인다’는 전략을 썼고 결국 성공했다.
작년 대선 직후부터 공화당 내에서 법안을 둘로 쪼개 예산조정 절차를 두 번 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로 하라”고 지시했다. 또 당내에서 메디케이드 삭감 수준에 관한 논란이 생기자 “손대지 말라”며 역정을 냈다. 하원에는 메모리얼 데이(5월26일) 전까지, 의회 전체로는 7월4일 독립기념일 전까지 통과시키라는 시간표를 제시하며 독촉했고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열혈 지지자들 중심으로 구성된 법안이 충분한 검토와 논의, 수정 없이 일방적인 형태로 통과된 것이 결국 공화당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공화당 톰 틸리스 상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은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그에게 “실수하고 있다”고 했다. 메디케이드 삭감이 하원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이번에 통과된 법안대로라면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향후 10년 동안 3조3000억달러늘어날 것이라고 미 의회예산국은 추정했다. 부채를 줄이겠다고 강조하면서 부채한도를 늘린 것도 모순적이란 비판도 나온다.
한국 기업들도 이번 법안에 큰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비중이 25%에서 35%로 확대된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와 풍력, 태양광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이 조기 폐지되거나 축소되면서 미국에 투자한 관련 한국 기업의 타격이 예상된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