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들 가격전가 놓고 협력사와 줄다리기
韓 생산량 관세부담 크지만
시장 경쟁력 지키기 나서
미국 수출 많은 배터리 업계
“벌써 단가 인하요구 쏟아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부과에 따라 주요 수출업체들의 미국 현지 가격 대응 전략이 관심을 끌고 있다. 관세 증가분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즉각 가격을 올리기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경쟁력 상실과 매출 하락을 우려해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일단 미국 내 판매 가격 인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3일 일산 킨테스에서 열린 ‘2025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취재진과 만나 “현재로서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현지 공급망을 확대해도 한국 내 생산 비율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관세 영향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연산 30만대 능력을 갖춘 ‘현대차그룹 메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가동을 시작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현재 가동률이 1%를 밑돈다. 기존의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 가동률은 각각 97.7%와 104.1%로 현지 생산을 극적으로 늘리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당장의 미국 매출 감소는 감당하되 내수를 확대하고 미국 출시 신차와 부분변경 모델 가격을 소폭 확대하는 방안 정도를 가능한 범위의 해결책으로 본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회장은 “지난해 내수 부진을 겪은 국내 시장을 활성화해 미국 시장 손실분을 당분간 한국 내에서 메워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을 비롯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의 가격 인상은 아니지만 부분변경, 세대변경에 따른 가격 인상 폭을 넓히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현대차는 올해 미국에서 팰리세이드 세대변경 모델을 출시한다.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배터리 업계도 가격 변동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관세로 미국에서 전기차 가격이 인상되면 셀·완성차사들은 생산 원가를 낮추려고 할 것”이라며 “원가를 구성하는 배터리 소재 기업에도 공급가 인하를 비롯한 압박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공급망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전자부품을 조달·조립하는 자동차 1차 벤더 A사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연합(EU) 수입품에 20%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자 독일 내 2차 벤더가 납품 단가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독일 2차 벤더는 미국 내 생산시설 없어 독일 공장에서 전자부품을 생산해왔다. A사 관계자는 “B사 담당자가 ‘관세 인상분만큼 단가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해 왔다”고 토로했다. A사는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B사가 절실한 상태다. 하지만 단가 인상을 그대로 수용하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고 완성차 고객사와의 가격 협상에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가 글로벌 전자부품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현지화 여부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고 결국 미국 소비자에게 가격이 전가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내 수출기업과 미국 수입업자 간에 관세 부담을 분담하는 줄다리기가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무역 업계는 관세 중 일부만 미국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나머지 인상분은 미국 수입업자와 국내 수출기업이 상호 분담하는 양상이 될 것으로 본다. 홍지상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미국 당국은 소비자가격이 관세 때문에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며 “현지 판매업자들도 소비자가격을 올리는 데 부담을 느끼는 만큼 국내 수출기업에 공급가를 낮추라고 압박하는 식으로 관세를 전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수출기업의 시장 지배력에 따라 관세 부담을 전가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조성대 국제무역통상연구원 통상연구실장은 “판매자가 시장을 주도하는 품목인지 아닌지에 따라 관세 증가분 분담 수준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범용 제품을 다루는 업종은 수출업체가 아닌 바이어(수입업자)가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 제조기업 사이에서도 품목에 따라 관세 부담을 떠안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