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 간 전쟁이 발생하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23% 줄어들 수 있습니다.”(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패권 전쟁이 확산할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가 핵심 산업 연구개발(R&D) 지원 등 산업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고려대 미래성장연구원과 한국산업지능화협회는 12일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에서 ‘트럼프 2.0 시대와 AI 혁명 가속화 대전환기 우리 첨단산업의 대응 전략’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조 바이든 정부의 주요 산업 정책이 축소 또는 폐지돼 국내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기차업계의 정책 민감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IRA 지원을 축소할 경우 안 그래도 ‘캐즘’(전기차 수요 둔화)으로 어려움을 겪는 배터리업계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중 패권 전쟁이 장기적으로 중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을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기술 자립에 성공하면 TSMC를 보유한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낮아진다”며 전쟁 발발 가능성을 걱정했다. 그는 올해 초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시나리오별 분석 결과를 인용해 “중국과 대만 간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가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TSMC가 위탁 제조하는 노트북·태블릿·스마트폰의 핵심 반도체 공급이 중단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 한국 정보기술(IT) 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도 산업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부연구위원은 “캐즘과 트럼프 행정부 등장으로 배터리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 우상향 궤도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며 “일시적 수요 둔화를 정부가 정책을 통해 받쳐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교수는 “한국 반도체의 약한 고리인 후공정에 R&D 지원 등을 강화하는 한편 첨단산업에 투입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성혁 산업통상자원부 첨단산업국장은 “반도체산업만 하더라도 10년 후에는 인력이 30만 명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글로벌 주요 공대 석박사 인력이 한국에서 쉽게 체류하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중국이 석유화학, 배터리뿐만 아니라 반도체산업 경쟁력도 바짝 추격하고 있다”며 “첨단산업에 뉴딜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전력망 특별법(국가기관 전력망 확충 특별법) 통과가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경기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력 인프라나 용수에 대대적인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며 “전력망을 보다 빠르게 확충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전력망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