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와 관련해 “한국 외환시장의 민감성 같은 부분에 대해 (미국 측과) 상당한 공감대를 이뤘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미국 현지에서 양자 협상을 벌인 뒤 지난 6일 귀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보낸 안에 대해서, 특히 외환시장 상황에 대해 서로 이견을 좁혀가는 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 4일 한국의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방안을 제시하고 러트닉 장관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5일에는 대통령실이 주재한 긴급 통상현안 대책 회의에 유선으로 참여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 달째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이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전에 진전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온다. 김 장관도 “일단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아마 머지않은 시일에 다시 또 만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 "韓·美 관세협상, 교착 아닌 예열단계"
연휴 중 김정관·러트닉 회담 후…APEC 전 협상 타결 기대 솔솔
추석 연휴 기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간 양자 협상에서 대미 투자 양해각서(MOU) 수정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의 대미 현금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 투자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정부 안팎에선 이달 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국이 ‘이견을 좁히고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다만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한국 측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돼 한국 협상단의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관 “한미, 이견 좁히는 중”
김 장관은 지난 6일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러트닉 장관과의 회담에 대해 “큰 틀에서 우리 외환 시장이나 국민 경제에 미치는 중요한 부분에 대해 (미국 측과) 이견을 좁혀가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 9월 5일 미·일 양국이 관세 협상을 타결한 후 나온 정부 당국자 발언 중 가장 낙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말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달러(약 493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시행하는 내용의 관세 협상을 타결한 후 투자 방식과 이익 배분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왔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 요구대로 단기간 3500억달러의 현금 투자를 진행할 경우 제2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며 투자 부담을 낮춰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미국 측 입장에서도 일본과 EU외 ‘트럼프 관세’의 성과가 필요하고, 정부 셧다운 장기화와 물가상승 등 미국 내부의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기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도 협상 타결을 낙관하는 근거 중 하나로 거론된다. 미·중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등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성공적인 양자 회담을 위해선 한국 측 지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러트닉 장관을 만난 김 장관이 “한국 외환시장의 민감성 같은 부분에 대해 (미국 측과) 상당한 공감대를 이뤘다”고 발언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협상은) 교착 상태가 아니라 양국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예열 단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김 장관은 현금 투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불(up front) 요구’에 대해선 “논의는 없었다”고 했고, 대미 투자 패키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가 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APEC 방한’ 전 추가 협의가 있을 수 있냐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APEC 이전 협상 타결 계기 마련하나
정부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와 관련 미국 측에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합리적 수준의 직접 투자 비중 조정 △‘상업적 합리성’ 차원의 투자처 관여권 보장 등의 조건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안팎에선 ‘수용 없인 서명도 없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경주 APEC 전에 가시적인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입장에선 미국과 ‘문서화’를 끝낸 일본과 EU(유럽연합)와는 달리 25% 자동차 품목 관세를 물고 있어 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 큰 부담이다. 관세 협상 장기화에 따른 상황도 녹록지 않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 7일 보고서에서 내년 세계 상품 무역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8월 1.8%에서 0.5%로 낮췄다.
정하늘 국제법질서연구소 대표는 “한국은 최소한 선언적이며, 정치적 타협이라도,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렇지 못하면 APEC 행사가 미·중 무역 합의 무대만 제공하는 외교 참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정 한국국제통상학회장(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미국이 ‘도로 25%(상호관세)’로 관세를 높이는 게 아니라 50%로 높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대훈/김형규/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