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미국 에너지부(DOE)가 15일(현지시간) 예고대로 한국을 포함한 민감국가 리스트(SCL)를 발효했다. 과거 사례를 고려하면 해제까지 최소 반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의 에너지 분야 연구 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리란 우려 역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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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에너지부 민감국가 리스트. (표=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지정과 해제 절차 ‘비공개’…최소 6개월 이상 전망
15일 외교 소식통과 업계에 따르면 DOE는 올 1월 초 한국을 최하위 단계인 ‘기타지정국가’로 포함한 새 민감국가 리스트를 이날 발효했다.
민감국가 리스트는 DOE가 공식적으로 대외에 공개하지 않는 내부 규정이기에 직접 발효 여부를 확인할 순 없다. 그러나 DOE가 이 건을 협의 중인 우리 외교 당국에 변동 여부를 통보하지 않은 만큼 시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빠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기에 예정대로 적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서 빼기 위한 미국과 교섭을 이어갈 방침이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미국 방문 중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의 만남 이후 한국의 민감국가 리스트 포함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안 장관은 내주 중 다시 미국을 찾아 협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외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DOE와의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곧 각 부처 장관이 직접 미국을 찾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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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왼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3월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에너지부 회의실에서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도 민감국가 리스트 해제까지는 최소 반년 이상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DOE는 지난 1981년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해 왔고, 1993년 12월 한국 정부가 그 사실을 파악하고 해제를 요청했으나 7개월이 지난 1994년 7월에야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DOE가 내부 규정이란 이유로 지정·해제 절차와 그 결과, 지정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 만큼 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
현재로선 지정 이유가 민감 정보 취급 부주의 때문으로 추정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며 교섭을 이어가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는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민감 정보 취급 부주의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한 바 있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와 관련해 “DOE 내부 절차에 따르는 것이기에 (한국의 해제까지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양국이 신속하게 협의한다는 합의를 했고 현재도 계속 실무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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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에너지부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원자로 시험 시설 모습. (사진=INL 홈페이지) |
한미 연구자 교류에 45일전 신고 의무
민감국가 리스트 발효에 따라 우선은 양국 에너지 분야 연구자에게 적잖은 번거로움이 예상된다. 민감국가 리스트 포함국 국민은 미국 에너지부 산하 17개 연구소 방문 때 최소 45일 전 신원조회 자료를 제출하고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난 한해 2000여명의 한국 학생과 연구원, 공무원이 DOE 산하 연구소를 찾았다.
미국 에너지부 직원이나 소속 연구자가 SCL 국가를 방문·접촉할 때도 추가적인 보안 절차가 필요하다. 대상 기관에는 이미 올 3월 관련 공문이 내려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조치가 단순한 연구자의 번거로움을 넘어 양국 간 에너지 분야 연구 협력을 위축시키리란 우려도 있다. 대상 기관이 연구자를 선발할 때 한국 출신 유학생이나 연구원을 민감국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채용을 꺼리는 등의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한국이 왜 민감국가에 포함됐는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만큼, 같은 이유로 한·미 공동연구가 지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 양국 정부는 이 같은 부정적 영향 확산 우려에는 선을 긋고 있다. DOE는 지난달 한국의 민감국가 포함 여부 확인 과정에서 “양자 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으며, 앞으로도 한국과의 협력으로 상호 이익을 증진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 역시 “최근 DOE와의 국장급 실무협의에서 앞으로의 한·미 연구개발 협력에 영향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