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중국 해운사가 미국에 입항하면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과의 관세전쟁이 ‘해운전쟁’으로 번졌다.
USTR은 17일(현지시간) ‘중국의 해양·물류·조선 지배력에 대한 조치’를 통해 중국 해운사와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 외국에서 건조한 자동차 운반선에 단계적으로 미국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선박과 해운은 미국의 경제 안보와 자유로운 무역 흐름에 필수”라며 “이번 조치는 중국의 지배력을 되돌리고 미국 공급망에 대한 위협을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수료는 180일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10월 14일부터 단계적으로 부과하고 매년 인상한다. 중국 기업이 운영하거나 소유한 선박은 10월부터 t당 50달러의 입항 수수료를 내야 한다. 수수료는 2028년께 t당 140달러까지 오른다. 중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건조했더라도 모든 외국산 자동차 운반선에 수수료를 부과한다. 미국 기업이 소유한 선박과 화물 없는 선박, 특정 규모 이하 선박은 수수료를 면제한다.
USTR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경우 3년 뒤부터 LNG 수출 물량의 일부를 미국산 LNG 운반선으로 운송하도록 했다. 2028년 4월까지 전체 LNG 수출 물량의 1%를 미국산 LNG선으로 운송하는 게 목표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조선·해운업을 강화하고 중국이 장악한 세계 해운·조선산업을 재편하는 동시에 관세전쟁에서 버티기에 나선 중국을 압박하는 이중 포석으로 분석된다.
중국과 경쟁하는 한국 조선업체는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그동안 가격이 싼 중국산 선박을 이용한 해운사들이 입항 수수료 부담 때문에 선박 발주를 한국으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USTR, 10월부터 中상선에 입항수수료 부과
中선박 쓸땐 원가 최대 17% 뛰어…조선 3사도 '수주 호재' 기대감
컨테이너 해상 운송 시장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작년 7월 5일 3733.8로 정점을 찍었다가 이달 11일엔 1394.68로 9개월여 만에 60% 넘게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폭탄’ 여파로 글로벌 물동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중국산 선박 입항료 부과가 확정됐다. ‘보릿고개’를 우려해온 국내 조선·해운업계는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중국산 배로 미국에 입항하는 해운사의 비용이 10% 이상 늘어나는데, 한국 해운사는 중국산 선박 비중이 극히 작아서다. 조선사들은 수수료 부담을 우려한 해운사들이 중국 조선사 대신 일감을 맡기면 수주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 中 초대형 컨선 수수료 41억원
18일 영국 해양정보업체인 로이드리스트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세계 3위 해운사인 CMA CGM(프랑스)의 중국산 선박 비중은 41%에 달한다. 1위인 MSC(스위스·24%)는 물론 2위 머스크(덴마크·20%), 5위 하파그로이드(독일·21%)도 20%를 넘는다. 중국 선사인 4위 코스코는 자국산 선박 비중이 8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 소속 해운사 선박이라도 중국에서 선박을 건조했다면 10월 14일부터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20달러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미국에 한 번 입항하는 데만 288만달러(약 41억원)의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통상 미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선은 한 도시만 가는 게 아니라 두세 곳에 접안하는데, 이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한다. 오정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국산 배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사실상 관세를 부과하는 효과”라며 “이번 조치로 중국 선박을 쓰는 해운사는 TEU당 원가가 9~17%가량 상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HMM은 보유한 컨테이너선 82척 중 중국산 선박이 5척에 그친다. 5척 중 용선(빌려 쓰는 선박) 2척은 내년 상반기 반납할 예정이고 사선(회사 보유 선박) 3척은 1700TEU급 소형으로, 동남아시아 노선이 주력이다. SM상선도 선박 12척 중 용선 2척만 중국산이다.
미국이 아닌 지역에서 건조한 자동차운반선도 CEU(1CEU는 차 1대를 운반할 수 있는 공간)당 150달러의 수수료가 붙는다. 6500CEU 규모인 자동차운반선은 미국 수출 시 척당 97만5000달러(약 14억원)의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자동차운반선은 미국산이 현재 세계에 2척만 있다. 현대글로비스를 포함해 모든 해운사가 동일한 입장이란 얘기다.
현대글로비스가 운영 중인 자동차운반선 98척 중 절반가량은 국내, 나머지는 중국에서 건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미 수출이 많은 일본 선사와 같은 조건이어서 유불리를 따지기 어렵다”며 “수수료는 화주(완성차업체)와 해운사가 일정 부분 나눠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韓 조선소 주문 늘어나나
중국 조선사의 ‘단골’이던 유럽 선주들이 HD현대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3사로 주문서를 돌릴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중국 조선사는 저렴한 인건비를 앞세워 조선3사보다 20% 이상 낮은 가격을 써 주문을 따냈다. 컨테이너선 등 글로벌 상선시장에서 중국 조선사의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미국의 중국 선박 입항 수수료 부과 계획이 처음 공개된 지난 2월 이후 중국 대신 한국을 찾는 선주가 늘고 있다. 작년까지 중국 뉴타임스조선에 컨테이너선을 10척 주문한 그리스 해운사 캐피털마리타임은 HD현대삼호에 8800TEU급 컨테이너선 6척을 주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국 조선3사의 ‘효자상품’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에서 미국과의 경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해운사가 미국산 LNG를 수출할 때 미국에서 건조한 선박을 써야 하는 비율을 1%(2028년 4월)로 시작해 15%(2047년 4월)까지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하면서다. 미국 조선산업이 부활할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다.
조선업계 생산담당 임원은 “LNG 운반선은 숙련된 인력은 물론 화물창 등을 공급할 수 있는 핵심 기자재 업체가 필요하다”며 “미국이 조선업 생태계를 갖추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김동현/김보형/김진원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