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소비자, 의류·가구·스포츠용품부터 지갑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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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4.30 08:48 수정2026.04.30 09:04

미국 백화점 / AFP 연합뉴스

미국 백화점 / AFP 연합뉴스

미국 소비자들이 가격이 크게 오른 상품 구매를 줄이고 여행과 의료 등 서비스·경험 소비로 지출을 옮기고 있다. 전체 소비는 버티고 있지만 물가 상승이 가계의 구매 품목과 기업의 가격 결정력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돈을 쓰고 있지만 지출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세금 환급으로 현금 여력이 있는 소비자들도 의류, 가구, 스포츠용품처럼 가격이 오른 상품에는 지갑을 닫고 있다. 반면 여행, 의료, 금융서비스 같은 일부 서비스와 체험에는 지출을 이어가고 있다.

WSJ는 신시내티에 사는 40세 섀넌 존슨-조지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 2월 개인 노트북이 고장 났지만 약 1000달러를 들여 새로 사지 않기로 했다. 그는 다음 달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도 기존 원피스를 다시 입을 계획이다. 평소 이용하던 온라인 소매업체에서 원피스 가격이 100달러를 넘는 것을 보고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슨-조지와 남편 크리스는 앞으로 5개월 동안 디즈니 크루즈, 이리호 방문, 뉴올리언스 브루노 마스 콘서트 여행을 예약해뒀다.

이 부부가 경제적으로 곤란한 것은 아니다. 존슨-조지는 옷장, 거실, 차고를 채우는 물건 가격이 너무 올랐다고 보고 그 부분에서 지출을 줄이고 있다. 그는 “우리는 활동에 더 많은 돈을 쓰려고 한다”며 “그 경험은 늘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가계 전반에서 이와 비슷한 선택이 늘고 있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의 2월까지 소비지출 자료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물가 상승률이 가장 컸던 상품군에서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지출이 가장 크게 줄었다. 의류 지출은 12월부터 2월 말까지 계절 변동을 조정하고 연율화한 기준으로 약 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의류 가격은 9% 올랐다. 가구 구매는 5% 줄었고 가격은 7% 상승했다. 스포츠용품 구매는 6% 감소했으며 가격은 16% 뛰었다.

르네상스 매크로 리서치의 이코노미스트 닐 두타는 이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결국 상품 지출은 약하고 상품 가격은 올랐다”며 “매우 단순하다”고 말했다. 이 흐름은 전체 소비지표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약점을 보여준다. 소비지출 총액은 견조해 보이지만, 소비자들은 상품 가격 인상이 두드러진 영역에서 소비를 줄이고 있다.

두타는 "현재 상황이 코로나19 시기의 인플레이션과 다르다"고 봤다. 당시에는 강한 수요, 현금이 풍부한 소비자, 공급망 병목이 가격 급등을 밀어 올렸다. 지금은 강한 수요가 아니라 관세와 공급망 압력 등 다른 요인이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 저항을 더 크게 마주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이 오른 모든 영역에서 지출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여행, 금융서비스, 의료서비스처럼 가격이 오른 분야에서도 지출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3월 소매판매는 휘발유 가격 상승 영향도 더해져 강한 모습을 보였다. EY파르테논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그레고리 다코는 "이 수치가 당분간 소비자들이 버티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더 큰 세금 환급이 높은 휘발유 가격을 일부 상쇄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다코는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소비를 둔화시킬 것으로 봤다. 3월 식당 지출은 전월보다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외식 가격은 0.2% 올랐다. 그는 소비자들이 소득 증가세 둔화와 가격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환경에 놓여 있다며, 이는 향후 지출 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처분소득이 있는 가계도 매일 선택과 협상을 반복하고 있다. 미네소타주 애노카에 사는 닉과 레이철 랄럼 부부는 지난 1월 멕시코 코수멜로 약 5000달러짜리 여행을 다녀왔다. 두 자녀와 사는 이 부부는 지역 농장에서 950달러를 주고 소 4분의 1마리분 고기와 돼지 한 마리를 사 냉동고에 채워 넣었다. 그 덕분에 스테이크를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먹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다른 지출은 다시 따지고 있다. 부부 합산 소득이 약 11만5000달러이고 주택을 보유하고 있지만, 테라스 공사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직접 하기로 했다. 식료품비를 줄이기 위해 채소도 기르고 있다. 웨딩 사진 사업을 하는 36세 레이철은 새 카메라 렌즈 구입도 미루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사진 장비와 관련 용품 가격은 지난 1년 동안 12% 올랐다.

레이철은 지난 5년만큼 일을 많이 확보하지 못할 경우 스스로에게 급여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름까지 예약이 차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소비 축소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향후 소득 불확실성에 대비한 현금 관리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카고의 재무상담사 마이클 비거스도 비슷한 흐름을 보고 있다. 그는 건강한 저축과 소득을 가진 고객들조차 재량적 구매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비거스 자신도 필요해서가 아니라 가격이 오르면서 일부 소비가 낭비처럼 느껴져 지출을 줄였다. 64세인 그는 기록관리자인 아내와 함께 연 20만달러 이상을 벌고, 호숫가 콘도를 대출 없이 보유하고 있으며 자녀도 없다.

비거스 부부는 자주 가던 식당 가격이 조금씩 오르자 주문 방식을 바꿨다. 예전에는 각자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애피타이저를 나눠 먹기도 했지만, 이제는 물과 1인당 메인 요리만 주문해 70달러 미만으로 식사를 끝내려 한다. 그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돈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비 변화는 단기적인 절약을 넘어 기업과 유통업체의 가격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상품 가격 상승이 수요 감소로 바로 이어지는 모습이 확인되면 기업들은 비용 증가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데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의류, 가구, 스포츠용품, 사진 장비처럼 소비자가 구매 시점을 늦출 수 있는 품목은 가격 저항에 더 취약하다.

다만 미국 소비가 전반적으로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금 환급, 여행 수요, 의료와 금융서비스 지출은 소비 총액을 떠받치고 있다. 문제는 소비의 질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상품 중심 소비가 약해지는 가운데 서비스와 경험 소비가 버팀목 역할을 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향후 시장에서는 임금 증가세, 휘발유 가격, 세금 환급 효과의 소멸 시점, 외식과 여행 지출 흐름을 함께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품 가격 인상이 계속되고 소득 증가세가 둔화하면 소비자들의 선택적 지출 축소는 더 넓은 산업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요를 유지할 수 있는 가격 수준과 비용 전가 여력을 다시 계산해야 하는 국면이란 분석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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