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관세율면 장사 못하죠. 근데 큰 걱정은 안해요. 이미 다양한 국가로 우회 수출 경로를 마련해놨거든요.” 중국 허베이성 스자좡에서 원단부터 봉제까지 의류 사업을 하는 기업가 천모씨는 한국경제신문에 13일 이렇게 말했다.
"美 기업들이 더 초조할 것" 반응
베이징에서 약 280㎞ 떨어져 있는 허베이성은 저장성 이우, 장쑤성 쑤저우 등과 함께 비교적 섬유·의류 산업이 발달한 지역 중 한 곳이다. 방직 공장이나 직물 가공, 염색 공장들이 입지해있다. 일부 완제품 제조 공장도 있다. 베이징 내에는 제조 공장이 들어설 수 없는 데다 노동력 비용이 베이징 보다 저렴해 베이징 인근 중소기업이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들이 꽤 있다.
그는 “피혁 같은 경우 미국에 수입되고 있는 제품의 90%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며 “특이한 원자재를 빼면 거의 중국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몇개월은 한국이나 베트남 등 이미 뚫어놓은 공급망을 따라서 수출을 하려고 한다”며 “당장 중국 중소·중견 기업 중에 관세 전쟁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보이진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오히려 “당장 미국 월마트 등에 각종 가죽 제품을 납품하는 미국 기업들이 초조해하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 지역에서 장난감 제조를 하고 있는 한 공장 관계자 역시 “기존에 네트워크가 있는 유럽과 동남아시아 시장 출하량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류와 장난감·공구 등 중국 중소·중견 제조 기업들이 미중 관세전쟁 속에서도 비교적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부과한 대중 누적 관세율이 지난 11일부터 총 145%까지 치솟아 일부 타격은 불가피하시지만 견뎌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들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조금씩 미국이 아닌 다른 시장을 개척해온 데다 제품 경쟁력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입을 모은다.
"동부 유럽, 중앙아시아 확장에 주력"
중국 산터우에 있는 장난감 공장들은 당장 이달부터 미국 배송 물량 비중을 종전 50%에서 10~20% 수준으로 줄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저장성 동부 해안 도시인 닝보에 본사를 둔 전자상거래 기업인 정정전자상거래의 야오정정 사장은 글로벌타임즈에 “한 시장이 불리하면 언제든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며 “전자상거래 수출은 미국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동부 유럽과 중앙아시아 등의 신흥 시장 확장에 더 주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경을 넘나드는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연일 치받는 관세 전쟁이 우려와 걱정이 큰 건 사실”이라면서도 “현재 제품 품질과 비용 효율성을 따져보면 아직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동부 저장성 이우에 본사를 두고 전문 공구 제조와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코난툴스의 왕샤오난 총괄 매니저는 최근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위해 매너지를 파견했다고 글로벌타임즈에 전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나 남미 고객이 전혀 없었지만 신속하게 협력 논의를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도 미국과 관세 전쟁이 장기화할 것으로 판단해 신속하게 기업들에 대한 관련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 특히 발빠르게 수출 기업들의 제품을 자국 내 판매로 돌리는 신규 채널 구축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당분간 중국 수출 제조 기업의 외부 불확실성을 상쇄하기 위해 자국 사업을 확대하는 데 정부 방침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내외무역 통합으로 내수 확대
이런 정부 방침에 따라 중국 프랜차이즈협회, 중국상업협회, 중국요리협회 등 중국의 대표 산업협회는 이날 공동으로 ‘내외무역 통합 촉진과 국내 시장 확대를 위한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중국 내 판매 채널이 아직 완전히 구축되지 않은 대외무역 기업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상품시장, 백화점, 슈퍼마켓 체인, 전자상거래 플랫폼 등 채널을 구축해주는 게 골자다. 이들은 단계적으로 대외무역 상품의 중국 내 판매 전환을 위한 특구나 매장을 설치할 방침이다.
중국 거대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닷컴은 다음달 1일부터 수출 지향 제품에서 국내 판매로 전환하는 제품의 대량 조달에 2000억위안(약 35조19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또 알리바바그룹의 식료품 기업인 허마프레시는 자사의 플랫폼 경쟁력을 활용해 고품질 대외 무역 제품을 전국 가정에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허융첸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최근 “관세 전쟁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할 수 있도록 어떤 정책을 시행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대외 무역 기업들이 자국 시장에서 더 사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소비재 무역 프로그램 등의 정책을 확대하는 등 국내외 무역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일부 중국 내 경제학자도 관세전쟁을 정부 시스템 전체의 인센티브 방향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4억명이 넘는 인구와 4억명이 넘는 중산층을 보유한 초대형 시장인만큼 수출 제약으로 인한 수요 문제를 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장준 푸단대 경제학과장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정책과 그 영향 가능성’을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교육, 연금, 의료비 등 가구에 제공하는 보조금을 더 늘려야 한다”며 “이를 통해 국내 수요 확대의 병목 현상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고 국내 총수요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