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강경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가 이달 중순 총리로 취임할 경우,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가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다카이치 총재가 보수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권을 잡았지만, 외교 경험이 부족해 향후 행보에 따라 한중 관계가 급격히 냉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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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실시된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사진=AFP) |
5일 마이니치신문은 다카이치 총재가 총무상, 경제안보담당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냈지만 외교 분야의 주요 보직을 맡은 적이 없어 외교 수완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매파로 알려진 다카이치 총재를 한국과 중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특히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될 소지가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 역시 “보수파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총재가 역사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 중국과 관계를 진전시키려면 균형 잡힌 정치 자세를 취할 수 있을지가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해 총재 선거 당시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적절하게 판단하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외교적 파장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하면서도, 여전히 자민당 내 보수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참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다고 전했다. 요미우리는 “보수층 결집을 위해 다카이치를 지지한 의원들의 압박이 여전하다”며 “그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할 경우 한중 관계는 단번에 경색될 것”이라는 외무성 간부의 발언을 인용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선거 과정에서 한국과의 협력 필요성을 언급하고, 중국과도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4월 대만을 방문해 라이칭더 총통을 만나는 등 대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행보가 이어지면서, 중일 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언론은 오는 31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카이치 총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회담이 성사될 경우 총리 취임 직후부터 한중 관계 개선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도쿄신문은 사설에서 다카이치 총재가 과거 A급 전범에 대해 “형이 집행돼 더는 죄인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점을 문제 삼으며, “역사 인식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궤도에 올린 한국과의 협력 관계를 냉각시켜서는 안 된다”며 “대립을 선동하지 않는 신중한 외교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내에서도 보수층 결집에만 치중한 정책 노선이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일본 언론은 오는 27일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이 다카이치 총재에게 첫 외교 시험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마이니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다카이치 총재가 개인적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미일 동맹의 억지력을 확인하는 것이 첫 관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다카이치 총재가 보수층의 기대와 현실 외교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가 향후 일본 외교의 방향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