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분쟁으로 이란 해역이 봉쇄된다. 일본이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정유사 이데미쓰고산의 유조선이 봉쇄를 뚫고 귀중한 원유를 실어 온다.’
쌍둥이처럼 닮은 사건이 73년의 시간차를 두고 재연됐다. 28일(현지시간) 일본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한 척이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온 것이다. 이란 당국이 요구하고 있는 통행료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 같은 이례적 일이 가능한 배경에 관해 이란 당국은 1953년 ‘닛쇼마루호 사건’을 언급했다. 일본 언론은 “이데미쓰고산 창업자 이데미쓰 사조가 발휘한 기업가 정신이 70여 년이 지나 일본에 다시 한번 선물을 안겼다”고 평가했다.
◇단비 같은 200만 배럴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따르면 일본 회사가 소유한 파나마 선적 VLCC인 이데미쓰마루호가 이날 오전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왔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이후 일본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달 초 일본 선박 세 척이 해협을 빠져나왔지만 모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었다.
이데미쓰고산 자회사가 운용하는 이데미쓰마루호는 지난달 초 사우디아라비아 주아이마 터미널에서 원유를 선적했지만 전쟁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27일 항해를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박자동식별장치 정보에 따르면 이 배의 목적지는 일본 나고야항으로, 일본까지 약 20일이 걸린다. 다음달 중순께 일본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유와 나프타 등 에너지 공급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초대형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자 일본 정계는 고무된 분위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유조선 통과는 일본 정부가 이란 당국과 협상해 얻은 결과이며 통행료를 지불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란 봉쇄에 맞선 미국의 ‘역봉쇄’로 호르무즈해협의 하루 선박 통행량이 한 척까지 줄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유조선이 해협을 빠져나온 배경에는 이데미쓰고산과 이란 정부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주일 이란대사관은 29일 X(옛 트위터)에 “닛쇼마루호 사건은 이란과 일본의 우정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 유산은 오늘날까지 큰 의미를 지닌다”는 글을 올렸다.
◇“닛쇼마루호에 대한 감사”
닛쇼마루호 사건이 벌어진 1953년에도 이란 앞바다는 막혀 있었다. 영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던 석유시설을 이란 정부가 국유화한 것에 격분한 영국이 해군력을 동원해 항구를 봉쇄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 이란산 석유 수입 금지를 선포하고 이란 석유를 운반하는 배는 격침하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경제 재건에 한창이던 일본은 에너지가 절실했다. 일본 기업은 글로벌 석유 기업들의 가격 담합에 높은 가격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때 이란과의 직접 거래를 결심한 이가 이데미쓰 사조다. 영국의 봉쇄로 저장시설에 묶여 있던 이란 원유를 대형 유조선 닛쇼마루호를 보내 저렴한 가격에 싣고 오기로 한 것이다.
닛쇼마루호는 영국 해군에 들키지 않기 위해 항로를 속이고 무선 통신을 끊은 채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섰고, 이란 아바단에서 원유를 가득 실은 뒤 일본 가와사키항으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서방 거대 자본이 독점하던 국제 원유시장에서 중소 민간 기업이 직접 산유국과 거래한 첫 번째 사례다.
놀란 영국은 해당 원유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법정에서 패소했다. 영국의 봉쇄가 무력화되는 계기가 되며 이란도 원유를 수출할 길이 열렸다. 이란이 오늘날까지도 일본과 이데미쓰고산에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다. 패전 후 실의에 빠진 일본에서는 “대국인 영국을 이겼다”며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이데미쓰 사조를 모델로 한 ‘해적이라 불린 사나이’ 영화가 제작될 만큼 유명한 사건이 됐다. 이슬람혁명 이후에도 일본이 이란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토대가 됐다.
일본 언론은 페르시아만에 남아 있는 다른 일본 선박 40척도 같은 방식으로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올지는 현재로서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이번 VLCC 통과는 이데미쓰고산에 한정된 이란의 예외적 조치라는 이유에서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

3 weeks ago
9














!['통한의 극장골 실점 패배' 주승진 김천 감독 "뒷심이 부족했다" [전주 현장]](https://image.starnewskorea.com/21/2026/05/2026051714010261496_1.jpg)
![[전화성의 기술창업 Targeting] 〈395〉 [AC협회장 주간록105] 마이클 잭슨 자산과 스타트업 경영](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5/04/news-p.v1.20260504.773e529e3f474adea55b425cf6daf8c2_P3.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