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헌법에서 ‘통일’과 ‘민족’ 개념을 삭제하고, 북측 지역만 영토로 규정한 영토 조항을 신설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무력 지휘권도 처음으로 헌법에 못 박았다. 김정은 중심의 통치 체계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두 국가 노선’을 법적으로 완성했다는 분석이다.
◇영토 조항 신설 의미는
6일 통일부 기자단 대상 언론간담회에서 공개된 북한 새 헌법 전문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3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처음으로 영토 조항을 신설했다.
북한은 개정 헌법 제2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로씨야(러시아)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영역에 대한 그 어떤 침해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문구도 함께 담았다.
기존 사회주의헌법(2023년 9월 개정)에 있던 ‘조국통일’ ‘민족대단결’ 등 동족 관계와 통일 개념은 대거 삭제했다. 기존 헌법 제9조에 명시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문구는 통째로 빠졌다. 이는 김정은이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통일·민족 단어 사용을 금지한 흐름을 헌법에 반영한 것이다.
다만 북한은 한국을 적대국으로 선언하는 내용은 넣지 않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 육·해상 경계선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기존 헌법에 있던 ‘제국주의 침략자들’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되여’ ‘내외적대분자들의 파괴책동’ 등과 같은 전투적 표현도 상당수 삭제됐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해상경계선 얘기가 빠진 건 북한 또한 분쟁을 만들고 싶지 않은 의사가 있었다고 판단한다”며 “대남 적대적 기조가 반영된 문구가 빠진 건 헌법 개정도 정상국가화하는 방향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 핵 지휘권 첫 명시
김정은의 권한은 더 강화됐다. 북한은 개정 헌법에서 국무위원장을 기존 ‘최고영도자’에서 ‘국가수반’으로 정의해 국가대표성을 부여했다. 헌법상 국가기관 배열 순서에서도 최고인민회의보다 국무위원회를 앞세웠다. 북한 헌법에서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보다 먼저 배치된 것은 처음이다.
핵무력 지휘권도 처음으로 헌법에 명문화했다. 북한은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있다”며 “국무위원장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도 있다”고 규정했다. 핵 통제권이 김정은에게 귀속돼 있음을 헌법 차원에서 공식화한 것이다.
국무위원장의 ‘중요 간부 임명’ 권한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내각총리가 명시됐다. 반면 최고인민회의의 국무위원장 소환권은 사라져 형식적 견제 장치마저 없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 시대 통치 이념도 헌법에 반영됐다. 기존 헌법 서문을 채우던 김일성·김정일 업적 서술과 ‘김일성·김정일 헌법’이라는 표현이 삭제됐고, 대신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국가 운영 원칙으로 명시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헌법 개정이 김정은 중심의 권력 구조를 제도적으로 완성하려는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선대의 정통성을 계승하되 이를 넘어 자신만의 업적과 통치 체계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읽힌다”며 “핵 지휘권과 국가수반 지위를 헌법에 명시한 것도 김정은 중심의 통치 체계를 더욱 공고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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