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제품 관세 줄여 드립니다"…미국은 지금 '세관 사기'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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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저장성 닝보시 닝보·저우산항에 쌓여있는 수출화물 컨테이너.  AFP연합뉴스

중국 저장성 닝보시 닝보·저우산항에 쌓여있는 수출화물 컨테이너.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수개월간 관세를 대폭 인상하면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 사기가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품값을 실제보다 낮게 신고하는 등 다양한 편법으로 관세를 피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단속으로 다 잡아내진 못하고 있어 성실하게 관세를 납부한 기업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더지 게임’이 된 관세 회피

3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최근 ‘관세를 피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이 미국 기업들에 쏟아지고 있다. 중국에 기반을 둔 해운 회사는 의류나 자동차 부품, 보석 등을 수입하는 미국 기업에 구체적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관세를 없애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한 미국 기업은 불명의 발신자로부터 ‘중국산에 대한 고율 관세를 피할 수 있다. 이미 실제로 많은 사례가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다른 업체는 ‘관세를 무력화하라! 10%로 관세 고정’이라고 적힌 메일을 수신했다고 한다. 외신은 “역사적으로 미국에선 관세 회피 시도가 항상 있었다”라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를 10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사기 수준도 정점을 찍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상품 가액 축소 △신고 상품 분류 조작 △제3국 경유 배송 등이다. 예를 들어 중국산 플라스틱 여행 가방의 실제 가격이 10달러(약 1만4000원)지만 5달러(약 7000원)로 신고하면 75% 관세 기준으로 3.75달러(약 5000원)만 납부하면 되는 식으로 관세를 줄일 수 있다.

"中제품 관세 줄여 드립니다"…미국은 지금 '세관 사기' 기승

신고 상품의 분류를 조작하는 방법은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셔츠를 면 셔츠로 속이는 것처럼 제품 소재를 바꿔 신고하는 식이다. 제3국 경유 배송은 중국산 장난감을 베트남으로 경유해 ‘베트남산’으로 통관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한때 최소 145%까지 인상했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인접 국가의 상품에 대해선 관세를 10%만 부과하면서 이런 전략이 수익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미국 제조업체 샬럿파이프앤파운드리의 브래드 뮬려 부사장은 “중국 기업은 즉시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기타 국가를 통해 제품을 환적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中 수출업체 “DDP 조건 해주겠다”

중국 업체 중 일부는 미국 기업들에 ‘DPP 조건’으로 물건을 보내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DPP 조건은 판매자가 운송비, 세금, 관세 등 모든 비용을 부담해 수입업체가 지정한 장소까지 상품을 인도하는 조건이다.

이런 조건으로 계약하면 외국 사업자인 중국의 판매 기업이 미국 제도상 ‘외국 수입자 등록인(foreign importer of record·FIOR)’으로 미국 세관에 신고하고 통관을 맡게 되고 관세 납부 의무도 지게 된다. 이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최근에 크게 인상된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중국 기업들이 이 제도의 맹점을 악용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 업체가 미국에서 FIOR로 등록하려면 소액의 보증금만 내면 된다. 이 때문에 FIOR로 등록한 외국 업체가 관세를 피한 사실을 미국 정부가 적발해도 실효성 있는 제재가 불가능하다. 해외 업체에 거액의 과징금이나 벌금 등을 매기더라도 실제로 이를 집행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이런 관세 포탈 수법에 협력한 미국 기업을 일부 제재할 수는 있겠지만 (미국 정부가 중국 업체들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무역 사기 단속은 미흡

미국 산업계에선 이런 ‘꼼수’의 성행으로 정직하게 관세를 납부하는 기업만 손해를 보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미국 자동차 부품 기업 ‘플루스’의 데이비드 라시드 회장은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속임수를 쓰려는 사람이 계속 이기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40년간 의류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레슬리 조던은 “업계에 사기 수법이 만연하고 있다”며 “중국과 미국이 모두 기회주의 사기꾼을 부추기고 많은 정직한 기업이 경쟁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단속 역량 부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미국 법무부는 이달 무역·세관 사기를 우선 수사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관련 인력은 이민 관련 부서로 전출된 경우가 많다.

업계는 의회에 단속 인력 확충과 형사 처벌 강화를 위한 입법 조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무역 사기에 따른 관세 손실이 연간 수십억달러에 이르고 정직한 미국 기업만 불공정 경쟁에 내몰리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우리는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 관세를 끌어냈지만 중국 업체들이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등으로 우회 수출을 시작했다”며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 문제를 수십 년간 방치했다”고 자적했다. 이어 “의회 차원의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의 트리시 드리스콜 대변인은 “최근 대통령 지시에 따라 최상위 수위의 처벌 조치를 집행하고 있다”며 “5월 5~9일 2000건 넘는 관세 회피 의심 물품을 조사해 6억3000만 달러(약 8700억원)의 관세를 징수했다”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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