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작가엔 ‘글쓰기 금지구역’ 있어… 금기 깨고 한발씩 들어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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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현실 다룬 ‘우한일기’ 작가 팡팡, 새 소설 ‘연매장’ 출간
루쉰문학상 등 당대 최고 여류작가
모든 책 금서 지정… 출간 권리 박탈
토지개혁 다룬 신작 中서 출간 못해… 권력 ‘냉폭력’ 온전히 기록하고싶어

중국 작가 팡팡에게 ‘연매장’과 ‘우한일기’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하나는 소설이고, 하나는 팬데믹 때 남긴 기록(에세이)이란 점에서 창작 방식이 완전히 다르지만, 인물의 삶과 운명을 다뤘단 점은 일관된 철학”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같은 무리라는 사실이죠.” 그가 든 글씨 ‘아래자강호(我来自江湖)’는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난 강호에서 왔다”는 뜻이나, 작가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제공

중국 작가 팡팡에게 ‘연매장’과 ‘우한일기’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하나는 소설이고, 하나는 팬데믹 때 남긴 기록(에세이)이란 점에서 창작 방식이 완전히 다르지만, 인물의 삶과 운명을 다뤘단 점은 일관된 철학”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같은 무리라는 사실이죠.” 그가 든 글씨 ‘아래자강호(我来自江湖)’는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난 강호에서 왔다”는 뜻이나, 작가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제공
“중국 작가는 다른 나라 작가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글쓰기의 금지 구역’이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작가는 그 금지된 깊은 곳의 문을 열고 한 발짝씩 들어가야 합니다.”

1950년대 중국 쓰촨성 촨둥(川東). 일가족이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목을 젖혀 독 비상을 삼킨 뒤 들어가 누웠다. 뒷일을 맡은 며느리는 이들 위에 흙을 덮는다. 관은커녕 멍석이나 천도 없이 묻는 ‘연매장(軟埋葬)’. 이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지난달 국내 출간된 중국 소설 ‘연매장’(문학동네)의 한 장면이다. 이 책을 쓴 소설가 팡팡(方方·70)은 중국에서 루쉰문학상, 루야오문학상을 휩쓸며 중국에서 당대 최고의 여성 작가로 대접받던 인물. 하지만 2020년 1월 우한(武漢)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봉쇄에 들어갔을 때 중국 당국의 부실한 대응을 다룬 에세이 ‘우한일기’를 발표하며 삶의 전환을 맞는다.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에세이 덕에 그는 2020년 영국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나, 중국에선 금서로 지정되며 수난을 겪었다. ‘연매장’ 역시 중국에선 읽을 수 없는 책. 토지개혁을 부정적으로 다뤘다는 이유였다. 칠순을 맞은 올해, 어려운 상황에도 문학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팡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연매장’은 주인공이 지주 계급이던 어머니의 과거를 추적하며 현대사에서 희생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사실 연매장은 중국 내에서도 요즘 대중에겐 익숙한 개념도, 단어도 아니다. 게다가 환생을 갈망하는 전통적 가치를 가진 중국인에겐 매우 잔인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연매장’이란 단어를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처음 들었다. 수년간 알츠하이머로 고통받으시던 중에도 “나는 연매장 당하고 싶지 않아!”란 말을 반복해서 하셨다고 한다. 그때 ‘연매장’이라는 단어가 내게 날아와 명중했고,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민감한 주제를 다뤄 금서로 지정됐다. 집필 과정에선 어려움이 없었나. “2015년 집필 때만 해도 인터넷에 토지개혁 관련 자료가 많았다. 개인 기록이나 회고도 아주 많았다. 촨둥의 몇몇 지역은 직접 답사를 가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은 허심탄회하게 토지개혁의 이익과 폐단을 논했고, 탄쑹(譚松) 같은 대학 교수는 토지개혁 참여자들의 구술사를 연구했다. 그런데 ‘연매장’이 출간된 뒤 인터넷에서 토지개혁 관련 자료가 빠르게 삭제되는 걸 목도했다. 중국 작가는 역사적 사건이든 현재의 것이든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은 금기를 깨고 한 걸음씩 들어가야 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이 소설은 그저 토지개혁이란 주제를 다루는 관점을 하나 보태고, 토지개혁에 대해 쓸 수 있는 범위를 조금 넓히려는 시도였을 뿐이다. 소설은 결코 토지개혁을 평가하지 않았다. 그저 개인과 가정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묘사했을 따름이다. 금서로 지정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조심스럽지만 현재 어느 정도로 검열을 받고 있나.

“우한일기 출간 직후부터 중국의 모든 저널과 잡지, 출판사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출간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심지어 옛날 작품의 재출간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한 사람의 출판권을 박탈해 놓고서 이유도 알려주지 않는다. 누구의 의도였는지도 알 길이 없다. 이런 일을 당하면 변호사를 찾아가도 소용이 없다. 소송을 걸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개적으로 금서를 지정하지 않는다. 모두 암암리에 진행된다. 비유를 들어보겠다. 어떤 고위 당국자가 팡팡의 작품에 대해 듣고 흰자위를 번득였다면, 이는 곧 출판을 금지하라는 공문서를 내려보낸 것과 다름없다. 관리들은 직접 나서서 금서를 지정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악행에 흔적을 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누가 혹은 어느 기관에서 출판을 금지했는지 물어봤을 때, 내가 들을 수 있는 정보는 두 글자뿐이었다. ‘윗선.’”

―그럼 개인 생활도 제약이 따르지 않나. 현재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나.

“계속 중국에서 지내고 있다. 중국을 떠날 생각도 없다. 어찌 됐든 내겐 한어(漢語)가 모국어니까. 나는 오로지 모국어로만 글을 쓰는 작가다. 한어를 제외하고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도 없다. 게다가 내 나이가 이미 일흔이다. 흔히들 ‘고희(古稀)’라고 하는 나이 아닌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 역시 부족하다. 물론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는 싶다. 정부에서 여권을 돌려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현재 집필하고 있는 새로운 작품이 있나.

“작품의 출간 및 발표를 금지당한 뒤에, 어떤 이유나 해명도 듣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나는 이러한 권력의 횡포를 ‘냉폭력(冷暴力·차가운 폭력)’이라고 부른다. 이 폭력이 너무도 냉담해서 실망하고 기도 많이 꺾였다. 원래 2020년 봄에 장편소설을 출간할 예정이었는데, 우한일기로 인해 그 작품은 세상에 나올 수 없게 됐다. 이후 몇몇 친구들은 팬데믹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책을 쓰라고 권하고 있다. 우한일기의 집필 과정과 정부가 퍼부었던 ‘사이버 불링’(온라인 괴롭힘)까지 포함한 내용으로 말이다. 아직 집필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3년 동안의 변화와 체험에 대해 누군가는 온전히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소설 ‘연매장’은 중국의 특정한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글쓰기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망각과 기록은 때로 선택의 문제이며, 어떤 경우엔 기록마저도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작가가 처한 불가능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글쓰기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사실 세상의 모든 문학작품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고 해도, 삶의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리고 나는 쓰고자 한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 글쓰기는 각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는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 또 다른 이는 이 세상을 기록하기 위해 쓴다. 어쩌면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아니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글을 쓸 수도 있다.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다. 글쓰기의 참된 의미는 기록 혹은 진실을 남긴다는 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쓴다는 것, 그 자체로서 의미를 지닌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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