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위 협동로봇 기업 아우보가 국내에 진출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직진출’이 아니라 대구에 있는 중소기업 A사를 통해 우회 진출했기 때문이다. A사는 아우보가 만든 ‘로봇팔’을 모터와 감속기 등 부품 단위로 수입한다. 국내에서 만든 받침대, 케이스와 함께 조립한 뒤 ‘메이드 인 코리아’ 라벨을 붙인다. 그렇게 만든 라면 조리 로봇과 바리스타 로봇 등을 국내에 판매한다.
중국 제품을 한국산으로 ‘택(tag) 갈이’하는 건 태양광 인버터뿐만이 아니다. 로봇, 전기차 등 첨단 분야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시장을 공략하는 동시에 미국 우회 수출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인천에 있는 중소기업 B사도 중국 로봇기업 시아순의 산업용 로봇팔을 최근 부품 단위로 들여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이를 조립한 뒤 미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에 수출할 계획이다. B사 관계자는 “로봇팔의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구동 소프트웨어”라며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한 만큼 국내산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로봇업계는 이런 중국산 택 갈이 제품으로 인해 한국이 미국의 우회 수출국 조사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용 로봇이 배치되는 반도체, 자동차 등 주요 제조 현장은 미국이 중국 기업의 진출을 막기 위해 애쓰는 곳이기 때문이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 생산하는 일반 로봇 제품이 중국과 연관된 것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정부가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도 비슷한 상황이다. 르노코리아는 부산공장에서 올 하반기부터 지리자동차 산하 브랜드 폴스타의 전기차 ‘폴스타4’를 생산해 미국 등에 수출한다. 그동안 폴스타는 중국 항저우 공장에서 폴스타4를 생산했다.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적용한 관세 폭탄으로 직접 수출하는 길이 막힌 가운데 한국을 우회로로 활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국산 폴스타4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부품이 대거 장착될 전망이다.
KG모빌리티(KGM)도 중국 비야디(BYD)의 하이브리드 플랫폼을 활용한 토레스 하이브리드를 최근 출시했다. KGM은 최근 중국 체리자동차와는 중·대형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공동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김진원/신정은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