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잠잠하던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 보조금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유심 정보 해킹 사고 여파로 두 달 동안 5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잃은 SK텔레콤이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가입자 되찾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폐지되면서 그동안 음지에서 벌어지던 보조금 경쟁이 합법화되는 것도 중요한 변수다.
9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달 SK텔레콤에서 KT, LG유플러스, 알뜰폰(MVNO)으로 통신사를 옮긴 사람은 44만490명이다. 다른 통신사에서 SK텔레콤으로 번호 이동한 3만4960명을 빼면 지난달에만 SK텔레콤 가입자가 40만5530명 순감했다. 지난 4월 22일 SK텔레콤이 유심 정보 해킹 사실을 발표한 이후 가입자가 급감하면서 4월 순감 인원도 11만4330명에 달한다. 두 달 동안 SK텔레콤을 이탈한 사람이 51만9860명에 이른다. 지난달 전체 번호이동 건수는 93만350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1% 늘었다. 단통법이 시행된 2014년 10월 이후 최고 수치다.
SK텔레콤이 지난 10년 넘게 유지한 시장 점유율 40%가 깨질 위기에 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SK텔레콤의 휴대폰 회선 점유율은 40.4%다. 여기에 KTOA가 집계한 4~5월 가입자 감소분을 반영하면 점유율이 39%대로 떨어진다.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 이탈자 유치에 나섰다. 지난달 말 보조금을 대폭 늘렸다.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S25의 공시지원금을 최대 50만원에서 70만원으로 높였다. 통신사가 일선 대리점·판매점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도 늘고 있다. 이른바 ‘성지’로 불리는 일부 판매점에선 갤럭시S25를 번호이동으로 구매할 경우 단말기값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돈을 얹어주기도 한다.
SK텔레콤은 현재 대리점(T월드)을 통한 신규 가입자 유치가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통신 3사 상품을 함께 취급하는 판매점에선 e심을 이용해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 SK텔레콤 역시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다른 통신사와 비슷한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업계에선 SK텔레콤이 가입자 유심 교체를 일단락하고 다음달 신규 가입자 유치가 재개되면 가입자 회복을 위해 대대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사의 단말기 보조금을 제한하던 단통법이 다음달 22일 폐지되는 것도 경쟁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애초 업계에선 단통법이 폐지되더라도 보조금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이 법이 만들어진 2014년만 해도 LTE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했다. 삼성전자 외에 LG전자, 팬택 등이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어 제조사 간 경쟁도 벌어졌다. 현재는 가입자 상당수가 인터넷, IPTV 등 다른 상품을 묶은 결합 상품을 쓰고 있고 스마트폰 시장 경쟁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SK텔레콤 해킹으로 다른 양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달에는 삼성전자의 신형 폴더블 스마트폰도 출시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제품 출시를 ‘트리거’로 가입자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 점유율 좁히기에 나선 KT, LG유플러스와 빼앗긴 가입자를 되찾으려는 SK텔레콤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