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계량되지 않는 성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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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톡톡] 계량되지 않는 성장에 대하여

어릴 적 체육 시간을 싫어한 이유는 그 자체가 힘들기도 해서지만, 내가 ‘운동을 못하는 아이’라는 생각 또한 한몫했다. 지금의 학생건강체력평가(PAPS), 이른바 ‘라떼 시절’ 체력장인 연례행사를 치르는 날이면 번번이 나의 유연성과 근지구력과 순발력이 얼마나 평균에 못 미치는지를 낱낱이 점수 매긴 등급표를 받아 들곤 했다. 특급이나 1급에 속한 친구들에 비해 나처럼 늘 낮은 급수에 머무르는 친구들이 운동 시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년 몸은 자라 조금씩 더 세지고 빨라졌지만 기준보다 몇㎝ 혹은 몇 초씩 모자라는 등급표에는 그간의 성장이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힘과 빠르기를 의무적으로 테스트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모두는 각자의 체력장을 치르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그것이 연례행사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것이다. 치러야 할 시험의 종목이 ‘조직 생활 적응력’ ‘직무 전문성’ ‘사회적 영향력’ 등으로 한층 심화했다. 모두 기르면 좋을 능력들이다. 기왕에 ‘특급’을 받는다면 삶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른의 세상에서도 성장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조직 사회에 더 잘 적응하고, 더 차별화된 전문성을 가지며,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이가 다방면의 능력치를 갈고 닦는다.

문제는 그런 비(非)신체적 능력은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도 “당신의 전문성은 5㎝ 짧고, 적응력은 7초 느립니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기에 객관적인 성장의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정해진 기준과 등급에 따라 평가받는 것에 익숙한 어른들은 계량되지 않은 성장의 과정이 불안하다. 급수가 한 단계 올라가야만 비로소 ‘성장했다’ 인정받을 수 있던 체력 테스트처럼 손에 잡히는 성취가 주어지기 전까지는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확신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이와 운동장 위에서 치르던 시험과 달리 삶이라는 시간 위에서 우리는 수많은 ‘모호한 종목들’을 경험한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유연성, 힘든 상황을 겪은 뒤의 회복 탄력성, 매일 똑같은 일상을 묵묵히 버텨내는 인내력, 하기 싫은 일을 지속하는 지구력 등 살아가며 길러지는 힘엔 애초에 기준도 평균도 의미가 없다. 등급표 위에서는 내내 운동을 못하는 아이였지만 사실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겪어내는 것만으로 성장하는 삶의 근육이 있다.

이런 모호한 성장을 알아차리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무엇을 해낸 사람, 팔로어가 얼마 이상인 사람이 되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소중한 이에게 진심을 다하는 사람인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우리는 즐거이 성장한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계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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